웬디북 리뷰
우리나라 소설업계에는 정말 고질적인 병폐가 있죠. 순문학이라는 말로 하나의 울타리를 치고 통속소설, 장르소설 등 다양한 분야를 배척하는 경향인데요, 그렇게 문학계의 헤게모니를 틀어쥔 사람들이 독자들을 경도시키고 자신들의 인식에 방패막이를 삼습니다. 아무리 인문학적 철학적 통찰이 넘치는 작품이라고 해도 장르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한 어떤 식으로든 인정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수없이 반복돼 왔지만 탄탄한 울타리는 허물어질 줄 모르죠.
그런 의미에서 외국은 장르와 상관없이 훌륭한 작품에 최고의 문학상을 수여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알맹이가 중요하지 외형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공감을 사고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Fahrenheit 451》의 저자 Ray Bradbury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문학계로 따지면 장르소설 나부랭이 작가가 미국 국립 도서재단(National Book Foundation)으로부터 미국문학 공헌 훈장을 받았던 겁니다.
SF 소설의 거장 Ray Bradbury의 작품과 세계관은 실로 방대해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정도인데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Fahrenheit 451》입니다. 그가 1947년에 출간한 단편 소설인 《Bright Phoenix》를 모티브로 1951년에 《The Fireman》로 확장시켰다가 이를 1953년에 지평을 새롭게 넓힌 작품이 《Fahrenheit 451》인데요, 미래에 대한 놀라운 예견에 그야말로 경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내용은 책이라는 존재 자체가 금지된, 사회 시스템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미디어를 차단하고 제한된 정보만 제공하는 근 미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불을 끄는 게 아니라 책에 불을 지르는 직업을 가진 Fireman이 주인공인데요, 그의 집은 그렇게 가공되고 조작된 정보만 제공하는 텔레비전이 삼면에 가득 차있고, 나머지 한 면도 채우고자 하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다 옆집에 사는 소녀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변화를 꿈꾸고 책을 불태우는 직업에 대한 사고를 재정립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쉽게 읽히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여주는 Ray Bradbury의 작품은 이 시대 최고의 거장이라 불렸던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을 통해 1966년에 영화화되었고, 마이클 무어 감독의 고발 다큐멘터리 《Fahrenheit 911》의 제목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가공되고 왜곡된 정보를 텔레비전으로, 인터넷으로, DMB로, 각종 매체로 전달받으며 책을 등한시하는 21세기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by 이글랜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