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의 셰익스피어’ 또는 ‘포크너와 헤밍웨이의 계승자’라고 불리는 인물이 코맥 맥카시 Cormac McCarthy입니다. 포크너 상을 수상한 1965년의 첫 번째 장편소설 《과수원지기 The Orchard Keeper》를 시작으로 타계하던 해인 2023년에 출간한 《Pasenger》까지 모든 작품이 걸작이라고 평가를 받는데요, 그러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바로 2006년작 《The Road》입니다.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퓰리처상을 비롯해서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 등 저명한 상이라는 상은 모두 수상합니다. 가디언 지가 선정한 21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 100선에서 17위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당연히 영화 등 여러 매체로 재생산되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The Road: A Graphic Novel Adaptation》은 코맥 맥카시의 승낙을 얻어 나온 최초의 그래픽노블입니다. 다만 2024년에 출간되었기에 2023년에 타계한 그는 이 작품의 출간을 끝내 보진 못했습니다.


미국의 문학 장르 중에 로드 문학 American Road Literature이 있습니다. 비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작가 잭 케루악 Jack Kerouac의 《On the Road》가 대표적인데요, 내용이 좀 파격적입니다. 젊은 청춘들이 미국 전역을 누비며 여행하는 이야기로, 술과 마약과 재즈와 섹스 등 온갖 향락의 장면이 무분별하다고 할 만큼 넘쳐납니다. 이 소설은 히피 문화의 탄생을 야기할 정도로 파급력이 컸는데요, 더 깊은 사정은 미국史와 관련 있으니 기회 닿으면 한 번 살펴보시기를 추천드리고요, 뜬금없이 《On the Road》를 언급한 이유는 이 작품처럼 자유, 젊음, 낭만 등이 로드문학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코맥 맥카시의 《The Road》는 완전히 다릅니다. 열정, 낭만 따위 없습니다. 그저 어둡고 처절하고 암울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코맥 맥카시의 작품 가운데 가장 밝은 축에 속한다는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온 세상이 파괴된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의 《The Road》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무런 목적 없이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남쪽을 향하는 이야기죠.
이들은 고기가 부족해서 인간이 인간을 사육하는 등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을 목도하고요. 아버지는 문명의 풍요를 기억하고 있지만, 아들의 세상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포칼립스입니다. 처음부터 달랐던 두 사람의 세계관이 코카콜라 하나 때문에 드러나는 장면은 안타깝고 씁쓸합니다.

이러한 맥카시 작품 속 뉘앙스를 프랑스의 유명 카투니스트 마누 라세넷 Manu Larcenet이 제대로 표현해내고 있는데요, 맥카시의 잔인하고 잔혹한 세상을 잉크 드로잉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픽노블은 역시 프랑스죠. ^^) 명작에 어울리는 대단한 그림이다 싶습니다.

아직 더 로드를 읽지 않았다면 그래픽노블로 접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원작이 인육 탐식이 기본일 만큼 잔혹하다는 점과 정서적 타격이 클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