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뉴욕에 많고 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유일하게 한 작가만을 위한 미술관이 있으니 노구치 미술관 The Noguchi Museum입니다. 현대 조각 예술의 거장으로, 조명과 가구 그리고 공공미술에 걸쳐 다방면의 활동으로 명성을 떨친 노구치 이사무 Noguchi Isamu(1904~1988)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곳입니다. 그만큼 뉴욕이 사랑한 조각가라는 뜻이죠.
조각이나 공공미술은 몰라도 그의 조명이나 가구는 지금도 생산되어 일상에서 만나봤을 겁니다. 특히 셀프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씩 구매해 보셨을 한지 램프(아카리 램프 이미테이션 제품은 무척 쌉니다)나 삼각형 유리 커피 테이블이 노구치 이사무가 대중화시킨 작품이거든요.
이름 때문에 일본인으로 오해받는데, 일본계 미국인이 맞습니다만 정확히는 혼혈입니다. 어머니는 미국 작가 레오니 길모어로 일본의 시인 노구치 요네와 연애할 당시 태어났는데요, 아버지가 고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모자만 삽니다. 2년 후 도쿄로 초청받아 갔더니 이미 다른 일본 여자와 결혼한 상태이고요.
(심지어 초청해놓고 외면까지 합니다. 재미있는 게 어머니가 일본에서 또 연애를 하는데, 그렇게 태어난 이복동생이 미국 모던 댄스의 선구자인 아이리스 길모어입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인생사가 순탄치만은 않은데, 이런 노구치 이사무의 삶을 담은 전기 그림책이 《The Snail》입니다. 그림책치고는 분량이 상당히 많은 88페이지로, 작가의 위치와 어린 시절부터의 인생역정 그리고 대단원에 이르는 3부 구성입니다.
혼혈에다가 태어난 곳은 미국이지만 자란 곳은 일본이며 다시 미국에서 공부했던,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그는 예술만이 유일한 탈출구였을 겁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을 달팽이에 비유한 조각 작품으로 표현했는데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The Snail》입니다.
(원래 가십이 재미있는 법인데 아쉽게도 프리다 칼로와 사귀었던 거나 이런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이는 《Charlie and Mouse Series》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예전에 한 번 소개했던 그림책 《Everything You Need for a Treehouse》의 그림을 맡았던 에밀리 휴즈 Emily Hughes입니다. 2022년 연말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번에는 글도 함께 썼습니다.
마치 돌 조각을 그림책 안으로 끌어들인 듯한 질감이 느껴지는 일러스트가 백미입니다.
by 이글랜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