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여기가 어디인질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을 잃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려 했는데 다들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납니다. 아마도 저처럼 길을 잃었나 봅니다.
앗, 여기는 도움을 요청하는 줄일까요? HELLO, EXCUSE ME! 그러나 그녀는 새카만 물을 내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북극곰이 한 소년을 만나 집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마리아 몰리나 Mariajo Ilustrajo의 2023년 봄 신작 《LOST》입니다.
도심 속에 떨어진 북극곰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동분서주합니다. 그렇게 보여주는 현대인의 짙은 일상은 어쩐지 슬프기만 합니다. 다들 길을 가면서도 고개 숙여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저마다 귀를 막고 있어서 다른 목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북극곰은 이 사람들도 자신처럼 길을 잃었다고 여겼던 거겠죠.
색감과 수채화에 펜 터치 등 전반적인 느낌이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Beatrice Alemagna의 《The Marvellous Fluffy Squishy Itty Bitty》와 유사한데요, 여기에 현대인의 삶이라는 페이소스를 한 스푼 첨가하면 나오는 작품이 《LOST》이 아닐까 싶네요.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경쾌하게 보여줬던 전작 《FLOODED》를 생각해보면 변신에 능한 것 같기도 하고요.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는 해피엔딩인데, 괜히 먹먹해지는 건 왤까요.
by 이글랜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