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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말 혹은 침묵 : 아니 에르노 장편소설 Paperback
"가끔 내게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비밀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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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29779
ISBN
9788937444760
페이지,크기
204 , 128*188mm
형태
Paperback
출판사
출간일
2022-02-04
이 도서의 태그
  • # Her-story
[출판사서평]
가끔 내게 비밀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비밀은 아니다. 그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없고,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니까. -본문에서

“내 삶에서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1958년의 여름, 나의 열일곱 살 무렵 말입니다. 나는 그 시기를 사회역사적으로 그려 내기를 바랐고, 이를테면 오토픽션의 방법으로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을 썼습니다.” -아니 에르노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아니 에르노의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작가의 초기작 중에서도 가장 실험적인 글쓰기와 문체를 선보인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관심사와 주제 의식은 데뷔작 『빈 옷장』, 세 번째 장편 소설 『얼어붙은 여자』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는 『그들의 말 혹은 침묵』에서도 여지없이 ‘여성’과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자신의 조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즉 문학을 통해 이 두 가지 지위(계급과 성)가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어떠한 역학 관계를 가지고 표리부동하게 작동하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사회학적 자기 성찰’이자 ‘문학적 사회 과학’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신랄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고 조형해 내는 ‘말’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아니 에르노의 글은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음성, 스타일을 지닌다. 이른바 ‘칼 같은 글쓰기’, ‘밋밋한(평평한) 글쓰기’라고 불리는 그것 말이다. 언젠가 “나는 경험하지 않은 것을 쓰지 않”고, “노동자 계급에 속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의 언어로 글을 쓴다.”라고 작가 스스로 밝힌 바 있듯이, 그의 독창적 문체는 주제 의식(자신의 계급과 성 정체성)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아니 에르노의 문학적 신조를 그대로 반영하듯, 이번 작품의 화자, 즉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사춘기 소녀 ‘안’의 이야기는 딱 그 시기의 언어(비속어와 은어, 준말 등), 의식의 흐름(가다듬어지지 않은 성마른 충동)을 따라서 경이로울 만큼 핍진하게 그려진다.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바로 이러한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 그 시작과 발전 과정을 오롯이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할 뿐 아니라, 거장의 문학적 변곡점(혹은 전환점)을 목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흥미롭다.

우리 부모는 노동자니, 난 그들의 현재 모습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여전히 지금도 교사가 되고 싶긴 하지만, 거기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늘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정말 신경질 나게 해, 아버진. 맨날 책에 코를 처박고 있으면 골치가 안 아프냐? 독서가 그의 강점은 아니다. 기껏해야 지역 신문 《파리-노르망디》나 읽고 중앙 일간지 《프랑스 수아르》를 조금 읽는 정도니. 가끔, 글을 읽을 때 방심하면 입술을 우물거린다.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공부는 너무 힘들다. -본문에서

난 그가 이렇게 거칠게 행동하는 까닭이, 이를테면, 그가 다른 사람의 뒤를 이어받은 셈이어서 그러는 것임을 깨달았다. 틀림없이 그는 내내 생각했던 거였다. 난, 그가 이전에 함께 잤던 여자들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가 그러는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에게 난 남자를 밝히는 여자로만, 그것 말고는 다르게 보이지 않음을 느꼈다. 숙소로 날 만나러 와. 거절했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내 마음에 들었던 그 여자 교관이 자기 여자라고 말했다. 걔 귀에 아무런 말도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낫겠지만, 오, 뭐, 중요하지 않아. 처음으로 남자애들과 나 사이에 무시무시한 구렁이 생겨났다. -본문에서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은 사회적 성공의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한 주인공 ‘안’이 작문 과제를 받으면서 시작한다. 항상 글을 쓰고 싶어 함에도 노동자 계급의 부모로부터 아무런 언어(이른바 문학적이고 교양적이며 학식 있는 언어)를 물려받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이 뿌리박혀 있는 조건(경험)과 고등 교육 기관의 담론 사이에서 비틀거린다. ‘안’은 가까스로 지난 여름 방학의 기억을 길어 올린다. 부르주아와 엘리트를 경멸하는 듯 굴다가도 정작 그들에게 벌벌 떨며 동경하고 숭배하는, 노동자 계급의 삶을 딸에게 결코 대물림할 수 없다면서 발악하는 주인공의 부모는 매일같이 ‘안’을 닦달하고, 혹시나 (계급의 사다리 위에서) 삐끗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하지만 이미 부모의 품, 그들의 언어와 사유로부터 놓여나기 시작한 ‘안’은 부모의 모순적 태도에서 연민과 염증을 느낀다. 그러던 중 성에 눈을 뜬 화자는 그동안 철저히 금지되어 있던, 그래서 더욱 간절한 자기만의 ‘쾌락’을 거머쥐고자 매 순간 골몰한다. 어느 날 ‘안’은 동네 근처의 방학 캠프에서 강사로 근무하는 대학생 무리와 어울리게 되고, 마침내 오래도록 고대해 온 성 경험을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들(남성들)은 계급 투쟁, 소외, 해방 등 온갖 이론을 설파하며 자유연애와 육욕을 긍정하면서도 막상 ‘안(여성)’에게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일종의 물건처럼 취급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제 ‘안’의 눈앞에는 작문 과제를 적어야 할 종이 한 장이 놓여 있고, 기억 저편으로는 지난여름의 메아리가 진동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같은 작품을 갈망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안’의 손끝, 텅 빈 백지 위에는 자신의 출신과 고등 교육 사이의 불화, 성을 둘러싼 모순과 차별만이 떠돌 뿐이다.

[목차]
그들의 말 혹은 침묵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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