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의 탄생과 책에 대한 준비작업, 내가 글쓰기에 부여하는 사회적, 정치적, 신화적인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글의 상상적, 실제적 공간의 주변을 이토록 배회했던 적은 없었다.” (본문 중에서)
그녀가 글을 쓰는 장소에서 진행된 인터뷰다. 우리가 자란 혹은 사는 장소가 많든 적든 글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의 배경이 되어 준다는 전제가 아니 에르노만큼 잘 맞아떨어지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글은 부모님이 운영하셨던 카페 겸 식료품점이 있는 이브토에서 출발하여 작품이 탄생하는 세르지, 그녀의 집에서 잠시 마침표를 찍는다(그녀의 마침표는 한시적이다. 자신의 삶을 쓰는 작가에게 마지막 문장이란 일반적인 소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일 테니). 거기에는 장소에 따른 시간의 흐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그것은 미래의 암시이자 전조이나 결론은 아니다. 자신의 책의 주제가 ‘시간’이 아닐까, 라고 말하는 이 작가는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강바닥에서 꺼낸 돌’과 같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환원하기 위해, 삶이 뿌리를 두고 있는 장소들을 글의 현실적 배경으로 두는 방식을 시작점으로 택한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흥미롭게도 이 인터뷰에서 아니 에르노는 자주 ‘시작’을 언급한다. 『빈 옷장』 『남자의 자리』 『세월』의 시작, 그렇게밖에 시작할 수 없었던 이유들, 거기 아니 에르노의 문학의 핵심이 있다. 그렇게 쓰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1940년에 소상공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신이 자란 환경과는 다른 세계의 고등 교육을 받았고, 프랑스의 격동기를 지나왔으며, 여성으로서 살아온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쓸 수밖에 없는,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는 글, 다시 말하자면 필연성. 사람들은 대부분 한 작가의 인터뷰집을 읽으며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기대한다. 어떤 방식으로 주제를 찾으며,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는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현상들이나 문학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면에서 아니 에르노는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쉽게 건네주는 친절한 작가는 아닌 듯하다. 그녀는 ‘어떻게’를 묻는 말에 자꾸만 ‘왜’를 답한다. 왜 그녀의 글이 그렇게 쓰일 수밖에 없는지, 왜 세상은 여전히 피부색, 국적, 사는 곳, 경제적인 능력, 사회적인 위치에 따른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왜 우리는 쓰고 읽고 생각해야 하는지.
책 속의 문장들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의 탄생과 책에 대한 준비작업, 내가 글쓰기에 부여하는 사회적, 정치적, 신화적인 의미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글의 상상적, 실제적 공간의 주변을 이토록 배회했던 적은 없었다. - 11p
사실상 무엇인가에 대해 쓰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 20p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를 구성하는 내면의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을 모아야 해요. - 66p
그렇다고 해도 제 생각에 글쓰기에서 효력을 나타내는 차이는 성별보다는 사회적 본성인 것 같아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회적인 출신이 결정짓죠. 서민 출신 혹은 그 반대로 특권층일 때,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아요. 그것은 분명히 글쓰기에 있어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구성요소로 남아 있죠. - 72p
글은 하나의 장소이죠. 비물질적인 장소. 제가 상상의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기억과 현실의 글쓰기 역시 하나의 도피 방식이에요. 다른 곳에 있는 거죠. 항상 글쓰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바로 침수하는 장면이에요. 내가 아닌, 그러나 나를 거친 현실 속으로의 침수. 저의 경험은 통과의 경험 그리고 사회 세계의 분리의 경험이죠. 이 분리는 현실에서 존재해요. 공간의 분리, 교육시스템의 분리, 별로 아는 것 하나 없이 16살에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어떤 아이들은 25세까지 계속 교육을 받아요. 사회 세계의 분리와 저라는 존재를 통과한 분리 사이에는 상응하는 것이 있고 우연의 형태가 있어서, 저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제 인생에 흥미를 갖는 일이 아닌, 이 분리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일이 되게 만들어요. - 80p
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 - 103p
글을 쓰는 고통이 ― 선택한 일 ― 많은 사람들의 고통 ―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 ― 과 같은 유이며 그만큼 커다랗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오만일 거예요.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반적으로 지식인이 된다는 것, 육체적인 고통, 노동으로 인해 변형된 몸을 모른다는 것은 큰 행운이죠. - 118p
아시겠지만, 우리는 단어로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그리고 지금의 세상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들을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그것은 소비의 단어, 자본주의의 단어예요. - 128p
우리는 개인적인 체험을 하며 살아요.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서 그 체험들을 할 수는 없죠. 그러나 그 체험들이 당신의 것에서만 머무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는 안 돼요. 개인적인 것들을 넘어서야 하죠. 그래요. 그것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고 다르게 살게 하며, 또한 행복하게 해주죠. 문학으로 행복해질 수 있어요. - 134p
[목차]
서문 - 7
파리, 나는 그곳에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 - 12
저는 항상 중간에 껴 있었어요 - 22
어머니는 불이에요 - 38
책은 신성한 물건이었습니다 - 56
저는 글을 쓰는 여자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 68
강바닥에 있는 돌을 꺼내기 - 82
핵심으로 - 96
글쓰기 그것은 하나의 상태예요 - 104
시간의 흐름 - 122
진정한 장소 - 132
옮긴이의 말 - 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