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어떤 고통으로도 꺾을 수 없었던 한 영혼이
‘완벽한 희생양’에서 ‘투사’로 거듭나기까지
저자는 엡스타인의 성폭력 생존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어린 시절부터 여러 가해자에게 학대당했다. 여덟 살 무렵부터 아버지의 성적 학대가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친구마저 가해에 가담했으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도 외면한다. 오히려 갈 곳을 잃은 분노로 마약과 비행에 내몰린 딸을 재활시설에 감금해버린다. 저자는 청소년들을 죄수처럼 다루던 그곳에서 탈출하지만, 결국 또 다른 성범죄자 론 에핑거에게 붙잡혀 2년 동안 성착취를 당한다. 이러한 경험은 어린아이를 학대한 어른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라는 좌절과,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성적 매력뿐이라는 체념을 남긴다.
엡스타인과 맥스웰은 이처럼 무기력하고 취약한 소녀를 노려 범죄를 저질렀다. 맥스웰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소녀들에게서 신뢰를 얻었고, 엡스타인이 소녀들의 꿈을 후원하는 친절하고 자비로운 백만장자라고 속여 소녀들을 엡스타인 저택으로 유인했다. 이미 부당한 폭력에 수차례 노출되어 자존감을 빼앗기고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소녀들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지닌 엡스타인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저자는 그렇게 엡스타인의 ‘완벽한 희생양’이 되어 3년 동안 고통받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엡스타인의 신뢰를 얻어 탈출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엡스타인에게서 벗어난 후에도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저자가 엡스타인에 대한 고소장에도 남겼듯 ‘삶을 향유할 능력을 상실’하고 ‘되돌릴 수 없는 영구적인’ 상처를 입은 탓이다. 수년이 흘러도 엡스타인과 가해자들의 망령은 불쑥불쑥 떠올랐고, 엡스타인이 언제든 자신과 가족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모든 상처를 딛고 일어서 가해자와 마주하게 된 것은 딸의 출산 덕분이었다. 저자는 사랑스러운 딸을 보며 결심한다. 이 아이에게만은 자신이 당한 일을 절대 겪지 않게 하겠다고. 나아가 한 명의 소녀라도 더 구해내겠다고. 그녀가 트라우마와 침묵을 떨치고 ‘투사’로 거듭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파괴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성 덕분이었다. 세상에 좌절하고 자신을 혐오했던 그녀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정의에 대한 믿음으로 다시 일어선 것이다.
“결국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는 외침만이
우리 자신을 구원하고 타인을 움직인다”
버지니아 주프레가 엡스타인과 맥스웰을 공개적으로 고발한 것은 2011년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의 뜨거운 연대를 보여준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이전의 일이다. 그녀는 엡스타인과 앤드루 왕자를 가해자로 지목한 순간부터 ‘거짓말쟁이’와 ‘창녀’라는 모욕에 시달렸으며, 수도 없는 살해 협박과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세상은 엡스타인이 성폭력 후에 돈을 주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엡스타인을 찾아갔다’고 비난했고, 엡스타인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은 피해자를 ‘돈을 밝히는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다. 저자는 쏟아지는 모욕과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앞장서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용기에 힘입어 엡스타인을 비롯해 여러 성범죄자들로부터 ‘살아남은 자매들’이 아동성범죄자를 고발하는 데 동참했다. 미투 운동의 배경에는 분명 버지니아 주프레가 존재했다.
그렇게 수년이 흐른 2019년에야 드디어 엡스타인은 성매매·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범이자 ‘악의 반쪽’이었던 맥스웰도 2020년에 체포되었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형사처벌이 어려운 앤드루 왕자에게서도 사과와 합의금을 받아내고, 성폭력·인신매매에 관한 한계적인 법안들을 개정해낸다. 한 사람의 간절한 외침이 거대한 증언의 물결이 되어 세상을 바꿔낸 것이다.
버지니아 주프레는 2025년 4월,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엡스타인이 감옥에서 사망하고 맥스웰은 감옥에 갇혔지만, 여전히 그들과 같은 아동성폭력범들은 버젓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고통과 실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그녀는 ‘단 하나의 삶이라도 지켜내기를’ 바라며, 자신이 죽더라도 꼭 《노바디스 걸》을 출간해 달라는 편지를 남겼다. 이 책을 펼치는 것은 그녀의 소명에 부응하여 여성의 인권과 사회정의를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일일 것이다.
[목차]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의 회고록에 도움을 준 에디터, 에이미 월러스의 말
들어가며
제1부 딸
제1장 “꼬마”
제2장 그로잉 투게더
제3장 버지니아 리
제4장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못한
제5장 우리가 승리할 것
제6장 소원을 빈다고 다 이루어진다면
제7장 돌아온 유령
제2부 죄수
제8장 분홍색 저택
제9장 뒤틀린 혈관을 바늘로 헤집으며
제10장 정말 중요한 손님
제11장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
제12장 “네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제13장 “다른” 남자와의 시간
제14장 꼭두각시
제15장 도저히 용납할 수 없던 선
제3부 생존자
제16장 미소의 나라
제17장 괴롭힘에 맞서는 자
제18장 신혼부부
제19장 세상 반대편에서
제20장 세상에 나온 걸 환영해
제21장 요주의 인물
제22장 “이 아이는 타일러야!”
제23장 나만의 작은 공주님
제24장 작은 균열
제25장 다시 햇살이 비추는 곳으로
제26장 로키산맥의 환희
제4부 전사
제27장 막다른 길
제28장 넌 언제나 내 딸이야
제29장 엄숙히 선서합니다
제30장 심판의 시작
제31장 정의의 서막
제32장 살아남은 자매들의 연대
제33장 꺾이지 않는 의지
제34장 설상가상으로
제35장 반격의 시간
제36장 맥스웰을 재판장으로
제37장 매듭지으며, 다시 일상으로
제38장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소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