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시대를 향한 불호령 - 「양반전」, 「호질」, 「허생」
연암의 소설 세계는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세 단계를 거치며 발전했다. 십 대에 집필한 『방경각외전』에서는 종로의 거지인 광문, 변소 치우는 엄 행수 등, 종래의 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도회지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파격을 보인다. 그는 이 천하고 비루한 서민의 삶에서 지극히 향기롭고 의로운 인간적 가치와 품위를 발견하며 이들을 칭송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한다. 반면 상층의 양반과 학자는 무능하거나 위선적인 인간으로 묘사되며 풍자와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양반전」은 몰락한 양반이 빚을 갚기 위해 그 신분을 팔고 사는 과정을 통해 양반이라는 신분제가 가진 허위성과 경제적 무능을 통쾌하게 풍자하는 우언 소설이다. 양반 신분을 증명하는 증서의 내용은 곧 양반 계층의 기만적 행태를 폭로하며, 독자에게 통쾌한 웃음과 깨달음을 동시에 안겨 준다.
장년기 문학의 정수로 평가받는 『열하일기』는 외국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자는 북학론(北學論)과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고 의식주 생활 향상을 꾀하는 이용후생론(利用厚生論), 치국과 외교의 경세론(經世論)을 투영한 사상서다. 그 안에는 두 편의 명작「호질」과 「허생」이 실려 있다. 「호질」은 의인화된 동물 범이 당대 최고의 유학자 북곽 선생을 꾸짖는 우언 소설이다. 작가는 유가 경전을 패러디하고 과장된 표현을 구사하여 유학자와 열녀의 위선적 처신을 폭로하고, 나아가 인간 중심주의와 문명 자체의 잔혹함을 질타하며 문명 비판의 의의를 보여 준다.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해학과 재치로 가득하다. 「허생」은 탁월한 장삿술과 국가 경영 능력을 지닌 재야 인재 허생의 이야기다. 허생은 조선의 경제를 주무르고 국제 무역을 펼치는 영웅호걸다운 기백으로 독자를 흡인하는 마력을 뽐낸다. 특히 북벌을 도모하는 집권층을 향해 조선 사대부의 무능과 위선, 허례허식을 질타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의 경세(經世) 의식을 최고조로 드러낸 걸작이다.
노년기 작품인 「열녀함양박씨전」은 안의 현감 재직 중 발생한 젊은 과부의 자결을 소재로 삼았다. 서두와 본전에는 서로 다른 두 명의 과부가 등장한다. 자결한 열녀와 자결하지 않은 열녀다. 두 과부의 대비를 통해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지를 웅변한다. 두 열녀를 나란히 세워 두어서 독자가 그 고통에 공감하고 불쌍하게 여기도록 했다. 연암은 이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간주하고, 열녀라는 이름에 가둬 여인을 죽음으로 모는 조선 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와 몰인정함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인간의 고독과 연민, 시대를 초월한 문학의 봉우리
박지원의 소설은 세상에 나온 당시부터 그 주제와 문체로 인해 독자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렸다. 「호질」과 「허생」을 읽은 양반 사대부들은 북곽 선생과 이완 대장이 호되게 혼나는 장면을 보고 권위와 자존감이 무너지는 느낌에 불쾌함을 드러냈다. 실제로 보수적 유학자들은 연암의 문장을 "괴상하고 미쳐 날뛰는 점"이 있다며 기피했다.
그러나 연암의 소설은 "세상을 희롱하는 뜻이 숨어 있고" , "독자를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필사본으로 널리 유통되었다. 후대 학자들은 그의 소설이 조선 사회의 가혹한 인간 차별과 고질적 병폐에 대한 분노가 승화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작가 스스로도 조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자신의 작가적 양심의 문학적 표현이었다고 말하며 , "남들은 숙환별세(宿患別世)라고 부고를 내지만 자기는 숙분별세(宿憤別世)로 부고를 내라."라고 일갈했을 만큼 시대를 향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결국 연암의 소설은 이처럼 익살과 해학으로 힘을 가진 자를 비웃고 사회적 약자를 동정하며, 구조적 모순의 심층을 파헤치는 현실 비판의식과 인간의 불행에 공감하는 따뜻한 인간애와 연민을 동시에 담아낸다. 작품 속 녹여 낸 연암의 양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의 소설이 한국 문학의 큰 봉우리로 평가받는 데 크게 공헌했다.
[목차]
1부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의 소설
1 마장전(馬?傳) 9
2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21
3 민옹전(閔翁傳) 29
4 광문자전(廣文者傳) 43
5 양반전(兩班傳) 55
6 김신선전(金神仙傳) 62
7 우상전(虞裳傳) 73
[잃어버린 소설] 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 93
[잃어버린 소설] 봉산학자전(鳳山學者傳) 96
2부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소설
1 호질(虎叱) 101
2 허생(許生) 121
3부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의 소설
1 발승암기(髮僧菴記) 161
2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169
원문 179
작품 해설 232
작가 연보 2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