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두 소년의 사랑을 통해 그린
제1차 세계대전의 광기와 유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수백만 젊은이의 목숨을 삼키고 있던 때. 전선의 참혹한 현실은 곤트와 엘우드를 비롯해 한적한 전원 기숙학교에 머물던 프레슈트 동급생들에겐 먼 이야기였다. 그들은 우뚝 솟은 언덕과 바람에 휘날리는 초원을 누비며 아름다운 시(詩)를 읊고 위대한 대영제국을 찬양했다. 학급 신문에 실린 전사자, 실종자 명단에서 급우들의 이름을 마주하며 전쟁의 참혹함에 대한 소문은 듣고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전쟁의 낭만성을 더할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전선에 보내지기 전에 전쟁이 곧 끝날 거라고 믿었고 그 사실에 몹시 아쉬워했다. 게다가 곤트와 엘우드에겐 전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서로에게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끌림이었다.
곤트는 덩치가 크고 권투에 능한 소년, 엘우드는 학급에서 ‘시인’으로 통할 만큼 감수성 풍부한 인기 많은 소년이었다. 곤트는 엘우드를 향한 강렬하고 금기된 감정에 시달리고, 마침 집안의 강요에 떠밀리며 충동적으로 입대를 감행한다. 곤트를 그리워한 엘우드도 곧 그 뒤를 따라 전선으로 향하고 같은 부대에 합류하는데, 그는 자신의 시적인 수사력이 전쟁통에서는 어떤 쓸모도 없음을 곧 깨닫게 된다.
엘우드가 애국심과 낭만적 기대를 품고 들어선 ‘참호’라는 공간은 메스꺼울 정도로 참혹한 곳이었다. 벽에는 열심히 묻었으나 숨길 수 없는 시체 조각들이 보였고, 내장이 뒤섞인 흙이 담긴 모래주머니는 썩은 내를 풍겼다. 그러나 바로 이 축축한 참호에서 두 동급생은 그동안 감추고 외면해왔던 서로를 향한 사랑을 깨닫는다.
이제 그들에게 죽음은 일말의 낭만조차 허락지 않는 눈앞의 냉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비로소 두 소년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전쟁은 언제든 둘을 무참히 갈라놓을 것이다.
시간의 망각으로부터 꺼내 온
지난 세기의 슬픔
『인 메모리엄』의 저자 앨리스 윈은 대학을 졸업한 뒤 괜찮은 소설을 쓸 때까지 매년 한 편의 소설을 쓰기로 하고 세 편을 썼으나 모두 만족스럽지 못해 포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20세기 초 모교 말버러 칼리지 학생들이 발간한 학급 신문이 인터넷에 업로드된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것은 학생들이 학생들을 위해 쓴 신문이었고 토론 동아리나 크리켓 기사 등의 흥미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신문 속의 학생들은 흥분한 채 입대해 친구들에게 열띤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최고야, 아무도 나더러 목욕하라 하지 않아!” 그러다 그들은 점차 죽어갔고, 신문 속 추모의 글과 시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내며 순수한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다.
윈에 따르면, 20세기 전반에 나온 전쟁과 관련한 문학은 대부분 1920년대 후반, 끔찍한 트라우마를 10여 년 동안 소화해내며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승화시킨 이들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말버러 칼리지 학급 신문의 옛 글들은 그저 십대 소년, 그것도 절대적인 대재앙을 겪고 있는 십대 소년들이 다른 십대 소년들에게 쓴 글이었다. 윈은 친구의 죽음을 겪고 슬픔에 잠겨 애도의 시를 쓰고 본인 역시 전쟁에서 죽음을 맞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느꼈고, 지난 세기의 슬픔 속에서 자신만 홀로 남겨진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비극이 잊히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이 소년들에게 유일한 위안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펜을 들었고 소설은 단 2주 만에 쏟아져 나왔다.
이렇듯 이 책은 로맨스 소설로도 읽히는 두 소년의 깊은 갈망에 관한 작품이지만, 기술했듯 전쟁에 관한 기록으로서 출발하였다. 따라서 소설에는 ‘병사의 얼굴에 묻은 전우의 회색 뇌 조각과 붉은 피’라든가 ‘내장이 뒤섞여 살 썩는 냄새를 풍기는 모래주머니’ 같은 당시 참호의 풍경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담겨 있는데, 윈은 자신이 이 폭력들을 결코 상상하지 않았다고,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지난 세기의 폭력과 슬픔을 다룬 이 소설이 영미권에서 출간 후 3년이 지나도록 스테디셀러의 목록에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 그 폭력과 슬픔이 반복되고 있는 전쟁의 시대를 지나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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