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햇살처럼 찾아와 잠깐의 평화를 누리게 하는 이야기들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김혜진 세계의 깊이
『달걀의 온기』 속 작품들은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려 애쓰면서도 결국은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야 마는 이들의 “과묵한 선의”(추천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각 작품은 단절된 개인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서로의 삶에 개입하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을 통해 굳게 닫혀 있던 내면이 조금씩 열리고 그 틈으로 온기가 스며드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관종들」의 ‘정해’와 ‘영기’ 부부는 평소 타인의 무질서에 서슴없이 목소리를 내 눈총을 받곤 한다. 싸늘한 주변의 시선은 그들마저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남들도 반기지 않는 이런 일은 이젠 진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19면) 생각하게 만들지만, 막상 어느 추운 겨울날 길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목격하자 그들은 주저 없이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한다.
남편과 자전거가게를 운영하며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빈티지 엽서」의 화자 ‘나’는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수집한 외국의 빈티지 엽서들을 읽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의 일상은 조금씩 빛을 되찾아가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남자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며 균열이 발생한다.
이어지는 「푸른색 루비콘」과 「하루치의 말」 역시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맞닥뜨림으로써 일어나는 생의 파동에 집중하는 작품들이다. 김유정문학상 대상작 「푸른색 루비콘」의 화자 ‘나’는 아내와 사별한 뒤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추레한 행색의 한 남자를 만나고, 그의 부탁으로 허름한 양봉장에 차를 몰고 가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이 꼭 필요한가”(94면) 자문하던 ‘나’에게 남자와 보내는 시간은 진창에 빠진 차를 하릴없이 건져올리는 일이나 다름없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난 뒤 남자가 내어준 꿀물 한잔에 ‘나’는 뜻 모를 평화를 느낀다.
그런가 하면 타인과의 접촉이 언제나 온기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직이 상기시키며 서늘한 음영을 남기는 작품들도 있다. 어머니의 이불가게를 물려받게 된 「하루치의 말」의 화자 ‘애실’은 놀랄 만큼 말이 잘 통하고 배울 점도 많은 손님 ‘현서’와 가까워진다. 그녀와 함께하며 애실의 일상도 점차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이 달가운 변화를 만끽하던 애실에게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 묻는다. “애실씨, 혹시 걔한테 돈 빌려줬어?”(127면)
한편 「우연의 직조」의 화자 ‘우나’는 저명한 미술가 ‘안지일’의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는 일을 하던 중 안지일이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이를 맞닥뜨린다. 이 소설은 표절 논란과 그에 쏟아지는 비난마저 자신의 작품으로 흡수해버리는 미술가의 행위 앞에서 우나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담담히 따라간다. 「우리와 우리 아닌 것」 역시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욕망의 정체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삼년 전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아버지로부터 과거 절친했던 ‘희래 삼촌’에게 땅을 빼앗겨 물려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은 ‘나’의 혼란을 그려내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세 작품을 거치며 서늘해진 마음의 온도가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은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표제작 「달걀의 온기」이다. 투자 사기를 당한 뒤 아버지가 살던 고향 집을 처분하러 내려온 ‘선희’는 마을에서 어린 여자아이 ‘민지’를 자꾸만 마주친다. 버려지듯 조모에게 맡겨진 뒤 그곳에서 자라온 민지는 혼자 닭을 키우고 주변 어른들에게 달걀을 팔며 살아가고 있는데, 선희는 계속해서 눈에 밟히던 그애의 다부진 태도가 실은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자신의 태생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각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 자신이 내내 움켜쥐고 있다가 이곳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뭔가와 닮아 있다는 것을”(211면) 깨닫는다. 오랜 자기연민에 빠져 타인을 원망하기 급급했던 선희는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민지를 지켜보기 시작하고, 이는 점차 스스로를 돌보는 데까지 이어지며 끝내 하나의 달걀처럼 “자기 세계와 바깥 세계가 만나 이루어지는 아름다운”(해설, 정주아) 균형을 이루게 된다.
연약한 껍질 속에서 지켜온 마음을 건넬 때
시린 손바닥 위로 가만히 번져가는 다정한 온기
나를 지키기 위해 삼켰던 고독한 말들이 타인의 어깨를 다독이는 진심 어린 손길로 치환될 때, 『달걀의 온기』 속 인물들은 비로소 자기만의 성벽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타인의 고통에 함부로 뛰어들어 손쉬운 위로를 건네기보다 스스로 진창을 딛고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키는 김혜진 특유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방식은 지금 우리 시대에 소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고요히 증명해 보인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아주 조금의 틈을 내어주기, 빛을 비추어 그 밖에도 세상이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기. 그 “최소한의 일”(29면)이 남기는 “미약하고도 충분한”(100면) ‘달걀의 온기’는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깃든 온기 역시 결코 쉽게 식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우리는 그 온기와 함께 비로소 각자의 삶을 씩씩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작고도 귀한 용기를 나누어 갖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부분)
언젠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이 쓴 소설 속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 같냐고.
소설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에 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잘 지낸다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고. 왜 그런 답을 했는지 깊이 고민해보진 못했다.
돌이켜보니 그건 쓰는 이의 상황에 따라, 또 읽는 이의 형편에 따라 소설은 얼마든지 달리 쓰이고, 다시 읽힌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읽는 나’와 ‘쓰는 나’, ‘사는 나’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26년 봄
김혜진
[목차]
관종들
빈티지 엽서
푸른색 루비콘
하루치의 말
우연의 직조
우리와 우리 아닌 것
달걀의 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