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당신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까.”
「60평」 「관장님의 마지막 한 모금」
「60평」은 갑작스럽게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 20대 청년의 위태로운 심리를 다룬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부터 가업인 온라인 쇼핑몰에 매여 기계적으로 노동력을 부모에게 착취당해 왔다. ‘스스로의 삶’을 찾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지만, 기술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청년이 생존을 위해 당도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온라인 쇼핑몰의 물류 창고였다. 과중한 업무에 몸과 마음이 지쳐가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부모의 사망과 함께 주인공은 부모가 운영하던 쇼핑몰과 60평 창고를 책임지게 된다. 준비되지 않은 채 부모의 뒤처리를 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창고 아르바이트생에게 쇼핑몰만 유지해 주면 자신이 다른 모든 일을 하겠다는 기이한 제안을 받는다. “더 일하고 싶어. 그러니 폐업하지 마. 내가 더 잘할게.”
「관장님의 마지막 한 모금」은 삶을 충실히 살아냈기에 갈망하는 노년의 ‘완벽한 마지막’에 대한 보상 심리를 다룬다. ‘남생’이라는 가상의 지방을 배경으로, 대대로 명인을 배출한 ‘남생 우리술 체험관’의 시신을 재료로 술을 빚는 특이한 장례 풍습이 묘사된다. 남생의 우리술 명인은 자신의 몸으로 빚을 생애 마지막 술, ‘송별주’를 완성하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바쳐 자신의 몸으로 술을 빚어줄 제자를 물색한다. “술이 너무 맛있어서 술독에 들어가서 죽어버리고 싶은” 갈망을 이해해 줄 누군가를 찾을 때까지 자신의 삶을 포함한 모든 것을 술에 쏟아붓는 명인의 집착은 단순한 욕망을 넘어 하나의 숭고한 예술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상호 합의된 식인’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남기고자 하는 의지의 무게를 과연 타인이 어디까지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들도 무언가를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자신들도 감정을 느낄 줄 알았노라고.”
「여름, 우리는 함께 헤엄쳤고」 「보석의 마음」
「여름, 우리는 함께 헤엄쳤고」는 기생충을 소재로 ‘혐오’에 대한 기존의 감각을 뒤집어버린다. 주인공은 머리카락을 닮은 기생충을 이용해 탈모 치료제를 개발하려는 남편의 연구를 묵묵히 응원하며, 그를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는다. 사회적 인정을 향한 남편의 집착은 주인공의 희생에 기생하며 점점 커지고, 사회 속에 공고한 벌레에 대한 혐오를 자신의 상품이 이겨낼 수 있다고 과언하기까지 한다. 결국 남편은 실패하고, 주인공에게 자신의 마지막 작품인 ‘벌레로 만든 발모제’를 유품처럼 남기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주인공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남편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동시에 그를 그리워한다. 남편을 사랑하는 만큼 그가 사랑했던 벌레까지 사랑스럽게 느끼게 된 주인공은 남편의 흔적을 더듬기 위해 기생충의 고향인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혐오스럽지 않은 착한 벌레들 사이에서 남편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보석의 마음」은 멸망한 행성을 떠나 지구로 이주한 난민 곤충 외계인 자매와 그들에게 입양된 인간 딸 ‘선아’의 이야기를 다룬다. 감정을 느낄 때마다 몸이 굳는 병을 앓는 외계인들은 생존을 위해 감정을 거세하는 약을 먹어야 했다. 언니 외계인은 선아에게 ‘웃어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약을 포기하고 이른 죽음을 맞이하지만, 남겨진 이모 외계인은 선아를 끝까지 보살피기 위해 감정을 지우는 약을 계속 먹으며 무감 무정한 보호자가 되기를 택한다. 어린 시절 이모의 무심함에 상처받으며 자란 선아는 성인이 되어서야 그 ‘무감 무정’한 모습이야말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가장 치열한 사랑의 모습이었음을 깨닫는다. 종이 다르기에 감각되지 않았던 거대한 희생을 소재로 작가는 ‘공존’을 위해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희생의 무게를 담담히 전한다.
“설정과 플롯, 독특한 스타일이 최상의 비율로 어우러진 진미.” _ 조예은(소설가)
모순된 현실 위로 피어난 SF적 상상력,
이멍이 그리는 지금의 한국
이멍의 소설은 전형적인 SF 문법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아주 익숙한 향수와 감각들이 느껴진다. 도시 외곽 창고 촌에서 흐르는 바람 속 알싸한 철 냄새, 전통 한옥에서 마시는 막걸리 누룩 냄새, 횟집의 물비린내, 아무도 없는 영화관의 갇힌 공기 속 객석의 가죽 냄새… 이멍은 이 감각들을 생생하게 끌어올리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씁쓸함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 씁쓸함은 한국의 노동문제, 돌봄 문제, 공장식 축산, 혐오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멍은 ‘의도하지 않았다’라고 언급했으나, 그의 글에는 그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기이한 현실감을 지닌다. 물류 창고에서 일하다 위에서 떨어진 안정기에 맞아 어깨를 다친 경험,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탈모에 대한 고민, 공장형 축산으로 고통받는 돼지의 눈빛을 알고 있으면서도 먹고 싶을 때마다 피순대를 사 먹게 되는 행위. 작가는 평범하게 영위하고 있는 일상 속에 숨은 의미들을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멍은 작가의 말에서 생각을 뒤집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독자를 설득하는 시도가 재미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귀신과 곤충, 외계인 등 자칫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 비인간들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배경과 작가의 탁월한 필력을 통해 생동감을 얻는다.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역전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역지사지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다』는 장르적 재미로 뛰어난 흡입력을 지님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어떻게 기억하며 내재화할지 묻는 독특한 깊이를 지닌 소설집이다.
[목차]
60평 - 7
여름, 우리는 함께 헤엄쳤고 - 77
후루룩 쩝쩝 맛있는 - 135
관장님의 마지막 한 모금 - 195
보석의 마음 - 227
작가의 말 -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