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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01591
ISBN
9788932027173
페이지,크기
301 , 125*191mm
출간일
2015-03-03
[출판사서평]
우리는 방임하고 외면하는 보통 사람들
그것이 부디, 나만은 아니기를

당신, 몸은 여기 살면서 정작 버릴 수 있는 거 이 중 한 가지도 없는 주제에, 그 빚 갚음 하느라고 혼자 깨어 있는 척 치열한 척하지 마.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으니까._「이창裏窓」에서

온갖 사건사고들 속에서 우리의 삶은 문자 그대로 재난 같았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은 우리가 겪은 재난 이전과 이후, 생각의 과정을 에둘러 보여준다. 서로 떠넘기니 문제가 생긴다. 나는 용케 코앞의 재난을 피했으나 아닌 사람도 있다. 잠시 반성하고 함께 슬퍼한다. 다만 애도와 공감엔 조건이 있다. 하나, 내가 피해 입지 않는 선에서, 둘,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낼 것. 제 몫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는 산뜻하고 비정하게 생각을 끊고 기원할 것이다. 어쨌든,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구병모의 소설에서 타인의 고통과 인류적 재난을 맞닥뜨린 인물들이 그리는 패턴과 사고방식은 지금 우리의 것과 닮아 있다.
피로한 삶을 소중하게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그것은 친구의 부고를 듣거나(「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지독하게 가난한데 홀로 아이를 키운다거나(「관통」) 아동 학대를 우연히 목격하는(「이창」) 등 현실에서 운 나쁘면 겪을 법한 일이다. 모든 걸 녹이는 산성비가 내린다든지(「식우」), 감정을 착취당하던 ‘을’들이 덩굴식물로 변해버리는 전염병이 마침내 창궐하는(「덩굴손증후군의 내력」) 것처럼 비현실적인 일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서 구병모 특유의 묵시록적 배경은, 현실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졸렬함을 증폭시켜 드러내기 위해 설정한 장치 같아 보인다. 자기변호와 합리화는 묵시록적 설정이 두드러지는 두 소설, 「식우」와 「덩굴손증후군의 내력」에 이르러 비정한 문장을 토해낸다. 사람도 녹이는 빗속에서 “한순간의 충동으로 하해와 같은 베풂과 나눔을 실천한들” “나중 가면 피차 난처해질 뿐” “품속에 몰티즈 한 마리나 무사히 지켜내는 게 정신적으로 남는 장사이며, 이 순간의 외면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다만 불가능한 행운과 안녕을 비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라 믿”는다. 한편 자신 역시 언제고 덩굴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멸과 착취를 당하는 사람들조차 “보기에 좀 불편해 그렇지, 못 본 척하고 가만있으면 지낼 만은 합니다”라며 한때 사람이었던 덩굴들을 말라죽게 내버려두고 심지어 베어버린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을과 을의 사슬이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상대가 나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나 역시 상대를 구하지 않는다. 설령 돕더라도 진짜 도움인지 알 수 없어 자기변호에 그친다거나(「이창」) 도우나 마나 더 비참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파르마코스」)이라는 것조차 실은 현실적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에 수록된 소설들은 무엇이 틀렸다고 호통을 치거나 서로 도우라,고 빛 좋은 교훈을 던지지는 않는다. 떠넘기고 외면하며 방임하는, 자기합리화를 일삼는 지금의 우리를 너무나 잘 보여줄 뿐이다. 치부를 살살 건드려 결국 터뜨려버리는 견고한 문장들을 지켜보는 일은 묘하게 통쾌하기까지 하다.

유모차 밀어다 커피숍에서 죽때리는 여자들이 당신 눈에는 한심해 보이지? 지금처럼 남의 집 일에 있는 대로 오지랖 떨면서 의식 있는 인간인 척 배운 티나 내는 당신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똑같은 뒷담화라도 그들의 말은 그나마 가볍고 털어버리기 쉬운 비산성이나 신축성이 있고, 감각적이며 즉자적인 욕망에 충실한 솔직함이 있지. 당신은 개인적인 관심사를 자꾸 있어 보이게 포장하려 들어. 행위의 본질은 대동소이한데 거기 자꾸 논리와 이유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간이라 자위하고 싶은 거지.
_「이창裏窓」에서

고개를 든 U의 눈앞에 신원 불명의 눈 감은 푸른 얼굴이 보인다.
옆에도 얼굴, 그 옆에도 얼굴. 성별과 나이는 다양하고 모두 익명이다. 첫눈에는 모든 얼굴들이 얼핏 평화로이 잠든 신생아의 그것 같았고 더 이상 삶에 그려 넣을 무늬가 없음을 익히 안다는 듯한 저마다의 표정들은 피안의 세계로 넘어간 것처럼 보여서 생물학적 감관을 비롯한 오온을 모두 상실한 줄 알았으나, 잘려나갈 때마다 그들은 이 세상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부릅뜬 눈과 주름진 뺨을 일그러뜨리고 몸부림친다. [...] U는 자신이 그들을 따라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나 실상은 자신의 피부를 타고 몸속까지 전해져 뼈를 울리는 진동과 뒤섞인 마음의 외침일 뿐이다. 저 소리가, 당신은 들리지 않아요? 아니면 들리지 않는 척할 뿐입니까? 저 팔들, 다리들, 아니 그러니까 저 줄기, 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간 육체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를 저 인면수(人面樹)들의 절규가.
_「덩굴손증후군의 내력」에서

우리는 인간인데 어째서 오랜 지배와 구속에 길들여진 짐승처럼 어느새 나를 때리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반응하고 꼬리를 흔들거나 내리게 되었을까. 그러니 너희들은 더더욱 짐승 취급을 당해도 당연하다며 누군가들은 의기양양하게 돌을 던질 텐데.
_「어디까지를 묻다」에서

세상 모든 이야기를 잇는 알레고리들
오늘의 문장, 어제의 이야기를 만나다

우리가 구병모의 책 속에서 보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책이다. 한 권의 책에 묶인 종잇장들 사이에서 다른 수많은 책, 수많은 이야기, 수많은 텍스트 파편들의 환영이 나타난다. 아동 학대, 교육 불평등, 계급 격차, 노동 착취, 빈곤 등 정의롭지 않고 비참한 현실의 서사들 틈에서 급작스럽게. 신화 속 괴물처럼, 경전의 우화인 듯, 철학 개념으로, 전설과 민담의 형태소로, 신화소로. 또한 예술 양식의 명칭과 예술가들의 이름으로 이야기는 불쑥 돌출한다. 그리하여 비일상적이고 기괴한 사건 위에 보편적 민담 형태소들의 망이 배치되고 비루한 일상의 묘사에 실존 화가의 구멍 뚫린 화폭이 덧발라진 구병모만의 누빔 소설이 발생한다._윤경희(문학평론가)

짧은 문장이 주류인 요즘이지만, 구병모의 소설에서 한 문장의 호흡은 꽤 길다. 구병모의 길고 정확한 문장을 채우는 것은 앞서 이야기했던 치밀한 현실 묘사만은 아니다. 구병모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리스 신화와 철학(「파르마코스」),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는 옛 설화와 현대 예술(「관통」), 대중문화와 동시대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수다(「이창」「어디까지를 묻다」)까지 온갖 ‘다른 이야기’들이 표현이나 구성으로 불쑥 돌출된다. “잊힌 목소리와 버려진 말들”이 현실을 드러내는 디테일을 만나 구병모 특유의 화법이 완성하는 것이다. 꾸준히 “인간의 내면에 혼재된 선과 악의 문제를 탐구해”(허윤진)오면서도, ‘자기복제 없이, 늘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할’(권여선) 수 있었던 것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은, ‘제대로 만나 분노하고 고민하며 여러 방식으로 고통’(<채널예스 인터뷰>)을 주었던 책들, 텍스트들 덕분이 아닐까.
구병모는 현실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허기진 듯 동서고금 무엇이든 읽어낸 뒤, 제 안에서 소화시켜 소설로 써낸다. 그것이 작가이기 이전에 동시대 사람으로서 현실 반영적 이야기를 한다 해도, 구병모의 소설이 차별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먼지와 시간이 쌓인 옛이야기들은 “마치 체처럼 현실과 언어를 까불어 현대 서사를 정제”(윤경희)한다. 언뜻 지극히 현실 반영적이면서도 다시 보면 가장 본래적인 ‘누빔 소설’,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말맛에 감탄하며 한 번, 멈추어 숨은 의미를 새기며 다시 한 번 읽을 필요가 있다.

[목차]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파르마코스
관통貫通
이창裏窓
식우蝕雨
이물異物
덩굴손증후군의 내력
어디까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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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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