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80쪽 그림책에 차곡차곡 쌓은 묵직한 이야기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러나 우리 앞에 이미 도착했고 우리가 오롯이 살아낼 수밖에 없는 그 삶을 한 권의 그림책에 담았다. 작가 이혜리가 자신의 경험을 모티프로 창작한, 치매를 ‘함께 겪으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다. 특유의 경쾌하고 힘찬 선이 돋보이던 전작들과 달리, 이 작품은 여리고 부드러운 연필선을 겹겹이 쌓아올려 묵직하다. 캐릭터는 동물로 의인화했으나 이야기는 에두르지 않고 곧장 나아간다. 무려 80쪽의 부피에, 평온했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찬찬히, 차곡차곡 담았다. 만개한 복사꽃 아래 평화로운 한때와 자기다움을 발산하는 주인공,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작은 신호와 알게 모르게 달라지는 태도, 늘어가는 작은 다툼과 오해, 마침내 내려진 치매 판정, 좌절과 반성과 노력과 혼란의 시간, 이리저리 널뛰는 감정, 희뿌연 안개 속을 떠도는 기억의 조각들. 담담한 글과 따뜻하면서도 어딘지 처연하게 아름다운 그림이 담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쿵, 가슴이 내려앉는다.
가만한 응시와 곱씹는 질문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인물
치매와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인가. 기억을 잃어가는 사자 씨는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진다. 머릿속은 짙은 안개로 가득하고 세상은 저만치 멀다. 작가가 보여주는 사자 씨의 얼굴은 온화하고, 의혹에 사로잡힌 듯하고, 불안하고, 심술궂고, 아련하고, 무기력하다. 치매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쌓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사자 씨의 얼굴로, 몸짓으로, 마음의 풍경으로 사무치게 깨닫는다. 납작하게 대상화되지 않은, 말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이 주는 선물이다.
작가는 토끼 씨의 성실한 보살핌 뒤에 숨은 피로와 두려움, 분노와 죄책감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답해 줄 이 없는 질문에 사로잡힌 토끼 씨를 보여준다. “사자 씨 안에는 예전의 사자 씨가 얼마큼 남아 있을까?” 치매는 ‘기억으로 정의되는 정체성’의 위기다. “기억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사자 씨는 사자 씨일까?” 덜컹거리는 일상과 돌봄의 고단함 너머에서 우리는 두고두고 곱씹을 존재론적인 질문을 만난다.
계속되는 삶, 계속되는 이야기
이 책은 책등을 벗겨 종이가 접히고 겹치고 실로 엮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하드커버의 가장자리를 잘라 단면을 드러내 안팎의 크기를 맞췄다. 삶의 이면을 드러내듯 책의 이면도 드러내려는 뜻이다.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뉜 구성은 삶의 구구절절을 곡진하게 드러내고, 책갈피에 끼운 듯 배치한 그림과 곳곳에 놓인 크고 작은 가족사진은 이야기를 확장시켜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연필선 중심의 모노톤에 절제하여 쓴 색상도 인상적이다. 좋았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복사꽃의 분홍빛은 사자 씨의 환상 속에서 끝내 잊히지 않는 그리움으로, 잘려나간 복숭아나무 줄기에서 새로 돋아나는 희망으로 아름답게 빛난다. 여전한 혼란과 고민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며, 끝없는 질문만이 가득한 시간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살아 있는 이들의 몫이리라.
보림출판사 창립 50주년 기념 도서 <내일의 책> 시리즈 두 번째 출간도서
저자의 말
엄마는 서예를 오래 하셨다. 좋은 붓이나 종이를 산 날이면 온종일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엄마가 문득 서예를 멈췄다. 의아하여 묻는 내게, 피곤해서 이젠 안 할 거라며 별일 아닌 듯 짧게 대답했다. 먹 냄새를 좋아하던 엄마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엄마는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 아파트 발코니는 엄마의 작은 꽃밭이었다. 어느 날, 집 안 가득 진동하는 풀 비린내에 놀라 나가 보니 발코니의 식물들이 밑동만 남기고 싹 잘려 있었다. 물 주기가 귀찮아 다 잘라 버렸다고 엄마는 태연히 말했다. 시들어 버린 화초도 새파랗게 되살리던 엄마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언니는 조용필 콘서트에 함께 간 엄마가 노랫소리가 시끄럽다며 버럭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가 버려 황당했단다. 조용필의 <한오백년>과 <친구여>를 즐겨 듣던 엄마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시 태어나면 자식 많은 부잣집 넷째 아들로 태어나 중이 될 거라던, 그래서 온 세상을 바람처럼 떠돌아다닐 거라던 엄마는 진짜 바람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는 입은 옷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단잠을 잤다. 다 끝났다는 후련함이 슬픔보다 컸다. 난 한동안 엄마를 추모하고 기억하기를 애써 외면했다. 엄마가 치매를 앓던 때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리기도 싫었고, 그 시기의 엄마를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야 할지도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폐허 같던 엄마의 모습에 내 미래를 투영하는 것도 괴로웠다. 얼른 시간이 흘러 누구보다 존엄했던 엄마만 내 기억 속에 남아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기만 바랐다. 나는 왜 엄마의 존재 그 자체를 품지 못하는 자식인걸까.
한동안의 주저와 망설임 끝에 결국 피하고 싶은 기억과 마주했다. 엄마를 돌보던 때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쓰고 그렸다. 이 작업 과정이 내 삶을 다음 단계로 이끌어 주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사 년을 넘겨 보내고서야 보였다. 가구도 없어지고 벽체도 뜯기고 바닥도 무너져 내린, 폐허가 된 엄마의 집을 그래도 끝내 지켜 내고 있던 남석 씨의 모습이. 고맙습니다. 이제야 당신이 온전히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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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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