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쉼표로 나뉜 너와 나의 사이에서,
오늘 하루를 서성이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지민의 그림책 『우리, 사이』를 읽고 나면 ‘우리’와 ‘사이’라는 단어의 가운데를 계속 서성이게 된다. 작가는 ‘우리’와 ‘사이’를 잇는 쉼표에 서서 질문을 건넨다. 우리는 함께일까? 너와 내가 이룬 ‘우리’ ‘사이’는 비록 쉼표로 나뉜 채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 짧은 반점은 어쩌면 나의 곁에 반드시 네가 있다는 작은 확신의 증표이기도 할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우리가 함께하지 않는 순간에도 함께임을 믿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우리가 머무는 공간을, 그리고 ‘너’와 ‘나’의 관계를 떠올리며 그림을 들여다보노라면 외로운 마음이 외려 담담하게 다독여진다. 오늘 하루를 움츠러든 마음으로 걸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이, 저마다 숨어든 공간의 작은 불빛들이 큰 위안이 된다. 어두운 방에 들어가 불을 밝히는 순간, 우리에게 말을 거는 저녁 빛 덕분에 내일도 살아갈 희망을 품게 된다.
책장을 덮자 위로가 남는다.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당신이 하루를 버티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세란 문학평론가)
“침묵 속에서 이야기가 탄생”하는 그림책 『우리, 사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오세란은 “그림의 여백 사이로 우리의 경험과 감정이 스며”드는 순간에 집중한다. 그는 거대한 도심을 배경으로 “고독이 증폭”되는 한지민의 그림에서 “표정 없는 인물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듯 서성이는 뒷모습에 외로움이 짙게 배어 있”는 장면들을 어루만지고 그림 속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중주”를 듣는다. 글이 없는 그림책에서 들려오는 이중주는 시인 박준의 시로 이어지며 고요한 독백이 된다. “빈집의 불을 켜고 들어”가 하루를 되새기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 그 안에 스며드는 ‘너’와 ‘나’에 대한 상념을 그는 나긋한 혼잣말로 전한다. “그래도 우리, 사이에서 이렇게 몇 번을 다시 살까요. 우리, 사이에서 서로를 다시 읽을까요.”
한낮을 지나는 동안 애써 떠올렸던 생각을 다시 지우는 저녁입니다. 집은 저마다 다르지만 우리는 돌아가야 할 곳이 서로 같습니다. (…) 생각해보면 나의 전부가 너의 전부에 미치지 못할 때마다 사이가 생겼습니다. 오는 나, 가는 너. 좁혀지는 표정, 좁혀지지 않는 혼잣말. 참으로 멀고 아득한 것. (박준 시인)
막막했던 청춘을 지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사이’에 관하여
‘사이’라는 단어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이 담겨 있다. 한곳에서 다른 곳까지의 거리, 한때로부터 다른 때까지의 동안, 서로 맺은 관계까지를 단 두 음절이 품고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사이’는 ‘어떤 일에 들이는 시간적인 여유나 겨를’을 뜻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 여유와 겨를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한지민은 ‘작가의 말’에서 “막막했던 청춘을 지나 여기까지” “나를 계속 걸을 수 있게” 한 것은 “작지만 평온한 공간이 주는 위로”라고 썼다. 그간 화가로서의 삶을 이끌어준 위로의 감각을 작가는 오직 그림으로만 『우리, 사이』에 담았다. 한지민의 그림 37점을 천천히 살피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놀라움과 동시에 큰 울림이 인다. 서성이는 걸음을 쉬일 공간과 방황하는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찾아 오늘도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을 건넨다.
저자의 말
지난 몇 년간 마음에 품어온 이야기를 이제야 꺼내놓는다.
붓질하는 동안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 움츠러든 마음과 직면해야만 했다.
작업을 끝내고도 그때의 나를 온전히 놓지 못해 아직 작아진 그대로다.
막막했던 청춘을 지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변함없던 건
나 혼자만의, 작지만 평온한 공간이 주는 위로.
그것이 나를 계속 걸을 수 있게 했다.
2026년 3월 어느 밤
한지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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