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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48027
ISBN
9791130675381
페이지,크기
112 , 128*200mm
출판사
출간일
2026-03-27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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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유고 시집 출간
미공개 시 47편 최초 공개

“문학은 아득한 하늘, 별과 같은 곳을 향해
영혼을 찾아 나서야 하고
땅 위에서 곡식을 심어 먹는 일이다.”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의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작가 박경리.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수많은 작품 뒤에 가려져 있던 ‘사람 박경리’의 마지막 언어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다. 다산책방에서 출간한 시집 『산다는 슬픔』은 토지문화재단 소장 자료에서 발굴한 미공개 유고 시 47편을 엮은 책이다. 박경리가 생전에 발표하지 않았던 시편들을 정리해 처음으로 공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박경리는 우리에게 소설가로 익숙하지만, 생애 동안 200편에 가까운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소설가 등단보다 1년 앞선 1954년, 상업은행 행우회 사보 《천일》에 발표한 시 「바다와 하늘」이 그의 첫 발표작이었다. 이후 『못 떠나는 배』를 시작으로 『도시의 고양이들』, 『자유』,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까지 총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문학의 시작과 끝이 모두 ‘시’였다는 점에서, 박경리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시를 읽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원주에서 『토지』의 최종장인 5부를 집필하던 시기, 박경리는 노트와 원고지에 하루하루의 노래를 적어 내려갔다. 이 시기에 쓰인 시들은 문단의 평가나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기록에 가깝다. 너무 솔직하고 너무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시가 잠들어 있었다. 그 기록 중 47편을 추리고, 제목이 없는 시에는 작가의 외손이자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인 김세희 씨가 할머니의 생과 작품 세계를 다시금 숙고하며 가제를 붙였다.

“홍수같이 눈물 쏟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슬픔이 우주만 한들”
살아 있으므로 쓸 수밖에 없었던 말들
매일의 삶을 시로 제련해온 시인 박경리의 마지막 고백

『산다는 슬픔』에 실린 시편들은 시대와 역사, 가족과 고통, 자연과 생명에 대한 박경리의 시선을 담담하게, 그러나 숨김없이 드러낸다. 삶을 되돌아보며 토해내듯 적어 내려간 고백이 있는가 하면, 원주에서의 시골살이 속 소소한 기쁨과 무료함, 시대를 향한 분노와 체념, 스쳐 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도 담겼다.

홍수같이 눈물 쏟을 수 없는 일 아닌가 / 슬픔이 우주만 한들 / 떠들고 웃고 춤을 추어도 / 마냥 그럴 수만은 없지 / 강변에서 불덩이 같은 해가 솟고 / 또 쓸쓸히 달이 떠오르는데
― 「사람」 중에서

새롭게 공개되는 「사람」은 표출되지 않는 거대한 슬픔의 상태를 담아낸다. 눈물로 쏟아낼 수 없을 만큼 큰 슬픔, 떠들고 웃으며 일상을 지속해야 하는 삶의 표면, 그 아래 가라앉은 감정의 무게를 절제된 언어로 드러낸다. 해와 달이 어김없이 떠오르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시는 슬픔을 극복하거나 해소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을 안은 채 세계와 공존하는 인간의 침묵과 품위를 응시하고 있다.

고향과 기억을 다룬 시편에서는 한 인간의 뿌리와 시간의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은빛 섬광으로 휘번득이며 / 고기가 노닐고 / 해초 나른하게 꿈꾸듯 춤추었다 / 환하게 드려다보이던 남쪽 바다 / 내가 태어난 항구 / (…) / 멀리 가까이 / 연인같이 오누이같이 / 다가서고 물러나는 섬, / (…) / 지금은 모두 전설이다
― 「고향 항구」 중에서

박경리는 「고향 항구」에서 고향을 감각의 풍경으로 복원했다가, 그것을 전설의 시간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그렸다. 은빛 섬광, 노니는 고기, 춤추는 해초 같은 생생한 이미지는 한때 환히 존재하던 남쪽 바다와 항구를 불러내지만, 그 세계는 더 이상 현재형이 아니다. 섬과 섬이 연인처럼, 오누이처럼 다가서고 물러나던 관계의 리듬 역시 시간 속에 퇴적되어, 결국 시는 개인의 기원이 된 장소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로 남았음을 선언한다.

또한 인생의 찰나와 사랑, 버팀의 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년의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로 다가온다. 견디는 삶 한가운데서 잠시 숨을 돌리게 하는 빛의 의미를 절제된 언어로 드러낸 「찰나의 별」에서, 박경리는 인생의 고단함을 전제하면서도 찰나의 평온과 황홀을 포착한다. 암흑 속의 촛불, 칠흑 같은 밤의 별이라는 비유를 통해 위안은 삶을 바꾸는 해답이 아니라 어둠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빛나는 순간적 구원으로 제시된다.

인생살이 험난한 속에서도 / 쉬어갈 때가 있다고들 한다 / (…) / 때로는 순간이 / 편안하기도 하고 황홀하기도 한 것은 / 암흑 속에서 타는 촛불이거나 / 칠흑 같은 밤 / 빛나는 별 하나이기 때문이리라
― 「찰나의 별」 중에서

함축적인 시편들에는 거대한 서사를 쌓아 올리던 작가의 힘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매일의 삶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해온 성실함과, 날것의 언어를 끝까지 붙잡아 시로 제련해온 끈기를 읽을 수 있다.

날마다 적어 내려간 내면의 숨결
저자의 육필 원고 11편 수록

이번 시집에는 미공개 시편과 함께 박경리의 육필 원고도 일부 수록했다. 작가 특유의 향토어와 구어체, 말맛과 호흡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어 집필 당시의 감정과 리듬을 생생하게 전한다. 토지문화재단의 김세희 이사장은 “할머니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써 내려간 조각 조각난 글들을 바라보니, 가족으로서 할머니가 감당하며 살아왔을 슬픔과 고통의 무게와 깊이가 심장을 찔러 왔습니다”라고 시집을 펴내는 마음을 밝혔다.

이 시편들은 ‘위대한 작가 박경리’가 아니라, 오래 살아온 한 사람이 비로소 꺼내놓을 수 있었던 말들이다. 고단했고, 화가 났고, 외로웠으며,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낸 사람의 얼굴. 이 시집을 통해 박경리라는 문학 세계를 기리는 동시에, 한 인간이 남긴 삶의 기록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1부 동춘
사람
가엾은 것들
고향 항구
동춘
개미
찰나의 별
노을로 물든 강가
삼가람길


2부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태풍
물망초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예감
서둘지 말게
문학
돌깔기

3부 어찌 이다지도 말씀이 없으시오
사물이 된 마음
자유
비밀의 독
기다리는 자의 승리
산다는 슬픔
어찌 이다지도 말씀이 없으시오
혼자 밥 먹기
꼴불견
취하는 것

4부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유한 속의 무한
적대 관계
불안
현실 사용법
무신론자
노동의 이유

무게
욕망
새벽
문명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5부 내 가까이 있는 사람
밤새
자연의 영
우리 집 고양이
양식
어둠을 기다리며
발걸음
검정고양이
내 가까이 있는 사람
속살

육필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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