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을까?”
① ‘오늘의 한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한국사
TV만 켜면 뉴라이트 논란, 극우와 좌파 사관의 충돌, 국경일 기념 방식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쏟아진다. 하나의 나라에서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왜 우리는 매일 남처럼 싸워야 할까?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 전범선은 이 긴 갈등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 근현대사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숲에서 전범선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왜 우리는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여전히 선과 악을 나누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갈라져야만 했을까?’, ‘왜 나는 철조망에 갇힌 이 반도에서 태어나 청춘의 시간을 바쳐야 했을까?’, ‘고라니와 두루미조차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선을, 왜 인간인 나만은 넘지 못하는 걸까?’ 제게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내야만 했던, 가장 개인적이고도 절박한 생존의 암호였죠. 이 질문들에 천착할수록 주어는 자연스레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깊은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을까?’ _본문에서
책은 우리가 그간 당연시해온 역사적 도식에 균열을 내는 흥미로운 질문들로 화두를 연다. 일례로 우리는 흔히 우파를 강력한 국가주의와 결부시키지만, 저자는 한국 우파의 숨겨진 뿌리로 오산학교의 남강 이승훈과 다석 류영모와 씨알 함석헌을 소개한다. 이들은 국가라는 존재가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전쟁과 착취를 일삼는 만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국가 권력을 넘어선 ‘씨알(민중)’의 주체적 연대와 정신적 자강을 강조한 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이 남긴 비폭력 평화주의 사상은 국가의 권위를 강조하고 타자를 배척하며 점점 고립되어가는 오늘날 목격되는 일부 우파의 모습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한국사가 잃어버린 소중한 보수주의의 목소리들이다.
또한 불세출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한때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를 ‘동양의 희망’이라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한국과 일본은 동양의 벗이 될 수 있다고 믿은 반면,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들어 일제에 팔아넘긴 이완용은 정작 평생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며 일본인을 대할 때조차 영어로 소통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던 선악의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이념의 껍데기 아래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마주할 수 있을 때 여기저기 멍들고 갈라진 한국사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진정한 테라피가 시작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죄책감도 분노도 애국심도 강요하지 않는 역사를 만나고 싶다!”
② 2D 교과서 너머에 있는, 21세기 독자를 위한 3D 한국사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은 저자 전범선의 독특한 이력에서 기원한다.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동서양의 사상적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미군복을 입은 한국군 카투사를 전역한 뒤 현재는 낮에는 서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밤에는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며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유교적 엄숙함과 로큰롤의 야성이 충돌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저자로 하여금 역사를 고정된 텍스트가 아닌,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886년 선교사로 조선에 와 고종과 각별한 우정을 쌓고 최초의 한글 교재까지 만든 호머 헐버트라는 인물의 삶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인 헐버트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한글의 위대함을 단번에 알아보고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하며 ‘한국학’의 기틀을 닦았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헐버트를 향해 ‘조선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그럼에도 호머 헐버트라는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우리조차 몰랐던 우리의 가치를 발견해주어 사대주의적 열등감이라는 트라우마를 치유해준 사람을 우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갑신정변 실패 후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조국을 위해 오히려 미국에서 번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신문을 만들었던 ‘필립 제이슨’ 서재필, 청계천에서 단발 투쟁을 하며 구습에 저항한 최초의 페미니스트 허정숙과 그녀의 동지들,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 미친 연기를 하며 자기 똥을 먹으면서까지 독립과 혁명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박헌영 등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사를 움직이고 다채로운 빛깔로 시대를 물들인 인물들의 숨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치유할 순 없을까?”
③ 이분법, 갈라치기, 극단주의를 넘어서는 치유와 화해의 한국사
저자와 함께 지난 한국 근현대사 200년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한국사가 사실상 서구 지향적인 ‘개화파’의 기록에 치우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개화 이전에 이미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적 원형인 ‘개벽’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조선 제일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 최제우가 선포한 동쪽의 학문, ‘동학’은 ‘네 안에 하늘님이 있다’는 인내천 사상을 통해 신분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으며, 이는 훗날 31 운동과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그 어디에서도 자세히 배워본 적이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지난 수천 년간 유교불교도교라는 동양의 깊은 철학을 소화해냈고, 그 위에 서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현대적 가치까지 치열하게 공부하며 학습한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수없이 많은 ‘정신적 학위’를 취득한 상태죠.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누군가의 정답을 복제하거나 이미 실패로 판명된 길을 따라가자는 것은, 학사석사박사까지 마친 사람이 다시 초등학교나 중학교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깊은 내공과 독립적인 주체성을 이제는 좀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개화’라는 프레임을 졸업하고 진짜 우리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어요. _본문에서
이제 우리는 ‘개화’라는 외부 문명의 정답을 복제하며 따라잡기에 바빠 초조해하던 시절을 졸업해도 되지 않을까? 저자는 시인 김지하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짝짝짝짝짝’ 박수 응원을 보며 발견한 정박과 엇박의 조화, 즉 태극의 에너지가 이미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치유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이어, 한 세대의 좌표이자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될 책”이라고 일독의 소회를 밝힌 이병한 교수의 말처럼, 편을 가르고 남을 탓하고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에 정체된 한국사가 지겹다면, 전범선의 말과 글을 통해 21세기 새롭게 변하고 있는 세계관의 기초를 함께 공부해보면 어떨까? 피식민과 독재, 수많은 이전투구가 가득했던 한국사의 민낯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한국사의 숨겨진 멋과 흥, 그리고 신명을 가감없이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건네는 14번의 ‘역사 테라피’를 통해 한국인으로서 품고 있던 복잡한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길을 나아갈 수 있을지’ 가슴 벅찬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추천의 글
기획자 노트
여는 글 |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테라피 1 개벽
“한국은 정말 ‘씹선비’의 나라였을까?”
_조선 제일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 최제우
테라피 2 독립
“그들은 왜 광화문에서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흔들까?”
_조국을 사랑한 검은머리 외국인, 서재필
테라피 3 한글
“외국인의 한국 사랑은 한국인들만의 국뽕일까?”
_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테라피 4 한류
“세계에 한국의 정신을 알린 한국 예술사 최대 아웃풋은 누구일까?”
_한류를 예견한 전자 무당, 백남준
테라피 5 매국
“무엇이 그를 나라를 팔아먹게 만들었을까?”
_조선시대 비운의 베타메일, 이완용
테라피 6 평화
“한국과 일본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_나라를 위해 몸부림친 두 남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테라피 7 민중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_민중이 꿈꾼 조선의 미래 그리고 동학을 만든 사람들, 최시형·손병희·전봉준
테라피 8 변절
“이 땅에 망국을 막을 천재는 정말 없었을까?”
_저마다의 변절을 택한 조선의 3대 천재, 이광수·최남선·홍명희
테라피 9 좌파
“그들은 정말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을까?”
어쩌면 지금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을 사람들, 화요회
테라피 10 우파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 우파의 역사가 보수주의의 전부일까?”
_한국사가 잃어버린 ‘평화주의’의 계보, 이승훈·류영모·함석헌
테라피 11 북한
“왜 소련은 수많은 지도자 중 김일성을 선택했을까?”
_거짓과 진실, 김일성의 50가지 그림자
테라피 12 남한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_남한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이승만·김구·여운형 (上)
테라피 13 분단
“우리는 왜 둘로 갈라진 나라에 살고 있을까?”
_남한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이승만·김구·여운형 (下)
테라피 14 태극
“한국사는 다시 평화롭게 합쳐질 수 있을까?”
_이념 갈등의 해답을 태극에서 찾은 선각자, 시인 김지하
닫는 글 | “저의 글과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인물 연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