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가까운 타인을 염려하는 마음은
나를 불안에 빠지게 할까, 혹은 살아 있게 만들까
『반대편 사람 주의』는 조경란 작가의 오랜 관심사였던 ‘가족’과 ‘재난’을 역시 포함하고 있다. 우리를 문득 두렵게 만드는 것은 도처에 널린 죽음이 가족이나 가까운 타인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은천에서」와 「그녀들」에서는 대학 강사인 ‘영서’가 자신과 가족, 그리고 한때 사랑했으나 더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이들과의 관계에서 겪는 단절과 이해의 과정이 담담히 그려진다. 불안정한 현재와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위축된 삶을 살고 있는 영서가 교류하는 사람이라고는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와 남동생 부부와 조카뿐이다. 중년의 나이이지만 가족에게서 독립된 삶을 살지 못하는 영서는 노인성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를 걱정하며 쉬지 않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지만, 정작 어머니가 자신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가출했다는 걸 알고 제일 먼저 느낀 감정은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이다.
어머니가 암시한 죽음의 가능성이나 불안과 싸우며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동안 영서의 내면은 노을에 물들듯 조금씩 바뀌어나간다. 어머니를 향한 그런 간절한 염려는 영서를 홀가분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그녀 자신을 버리지 못하도록 만든 누름돌이 아니었을까. 한때 의지하고 마음을 기울였지만 영서에게 배신감과 외로움을 안겨준 희미한 관계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입은 상처를 돌이켜보며 영서는 그 또한 “화가 난 게 아니라 슬픈 것”이었음을, 스스로 타인에게 쏟은 염려와 애착이 간절했다는 증거임을 알게 된다.
한편 「그들」과 「빗방울 하나 마른잎을 두드리네」 「절차」에는 영서가 그랬듯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중년의 대학 강사 ‘종소’가 등장한다. 가르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종소이지만 그에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교수로서의 삶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반복되는 헛된 기대와 좌절 속에 자신감을 잃은 그는 「그들」에서 자신에게 기회를 줄 것처럼 속였던 최교수에게 복수할 마음으로,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카페를 찾는다. 하지만 종소는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가다 사고를 내고, 카페 주인이자 최교수의 아내인 ‘영주’의 도움을 받으며 복수극은 어이없이 종결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삶에 조그만 숨통을 틔워준 것은 아마도 영주가 꿰매준 주머니의 솔기, 그를 볼 때면 목례를 보내던 영주의 작은 염려였을지도 모른다. 소설집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양지가 종소, 종소 어머니와 만나는 「빗방울 하나 마른잎을 두드리네」에서도 세 사람의 조용한 충돌은 “월화수목금토일 남은 날들”에 양분이 되는 온기를 남긴다. 이렇듯 나와 무관해 보이고 심지어는 반대편에 선 사람들과의 갑작스러운 긴장은 『반대편 사람 주의』의 인물들을 살게 하는 듯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조심스럽고 간절히 관심을 기울이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진실을 조경란은 그려내는 것이다.
“삶의 가운데가 아니라
늘 가장자리를 걷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때
사람은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된다.”
『반대편 사람 주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 돌아본다는 것이다. 고작 살아가는 일이, 생활을 꾸리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일러두기」의 ‘미용’은 평생 머릿속에 찌꺼기같이 껴 있는 끔찍한 기억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괴롭혔던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미용의 이웃이자 복사집을 운영하는 ‘재서’는 그녀의 출력물을 읽은 뒤로 미용에게 마음을 쓰고 있다. “외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는 문장을 남기고 사라진 미용을 걱정한 재서가 그녀의 집에 찾아갔을 때, 미용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상처의 기억을 ‘교련 시간’이라는 글로 다 쓰고 나니, 자신이 쓰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니라고 깨달은 것이다. 미용은 오히려 괴롭힘당하기 직전 보았던 복사나무에서 뻗어나온 새순과 후르르 떨어지던 분홍 꽃잎 같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쓰고 싶었다. 그 말을 들으며 재서는 미용이 선생님을 찾아가 “자신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계속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단 걸 똑똑히 보여주고 싶어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한편 「검은 개 흰말」에서의 ‘양지’는 홀로 가족여행에 따라가지 못한 중학생 조카를 돌보고 있다. 조카는 초등학생 때 목줄이 풀린 검은 개를 맞닥뜨린 이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조카가 화장실에 갇혀버리는 사건이 발생해, 가까운 곳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오랜 친구 ‘류원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양지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조카에게서 과거 류원장과 함께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자신을 겹쳐 본다. 그러면서 양지는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자신만의 불안을 조카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인 「절차」에 이르면, 종소가 ‘진술 문답서’를 쓰며 지난 학기 자살한 학생을 떠올리고 있다. 그 학생의 아버지인 어태조씨가 만나달라고 자꾸 메일을 보내서 그에게 미행당하고 있다는 불안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태조씨가 정말 원한 것은 아들을 기억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었으리라. 실제로 종소가 그와 대면했을 때 어태조씨는 “상민이 가고, 제일 좋았던 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듯 『반대편 사람 주의』의 인물들은 대체로 외롭고, 자신이 왜 외롭게 되었는지 돌아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조용하고 단순한 이야기들. 중요하지 않지만 하고 나면 충일해지는 이야기들.”(「일러두기」)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에만 발생하는 어떤 관계가 있음을 조경란 소설은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이 감당하고 있는 죽음충동을 통해 상대방의 죽음충동에 공명”하고, 그의 존재를 염려하며 그에게 붙들리는 “특별한 관계”(해설)다. 인물들은 죽음의 무게를 과장하거나 축소하지도 않고,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도 않은 채 서로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싶은 자신의 ‘일러두기’를. 자신이 미완성인 채로도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이토록 불안하고 외로운 우리가 생활을 꾸려간다는 무서운 사명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까. 『반대편 사람 주의』는 이 질문에 대한 기적 같은 방법을 들려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다 읽어낸 후 우리는 조경란 작가에게 똑같은 위로와 응원, 칭찬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30년을 한결같이 버텨내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에. 가늠할 수 없는 무수한 고비와 시련에 지지 않고 이런 세계를 성취해냈다는 데에.
저자의 말
누구나 어떤 것에 관해 불가해한 두려움을 조금씩은 갖고 있지 않을까. 이 소설집을 쓰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고 인물들의 그 지점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단편 한 편으로서는 완결되었는데도 그 인물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으로 계속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계획하지는 않았던 연작소설집이 되었다.
(……) 무언가를 나누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몰두해서 쓰려고 했다. 허투루 보내는 인물 없이, 가능한 한 진실된 글이 될 수 있도록.
2026년 봄
[목차]
은천에서
그녀들
일러두기
검은 개 흰말
그들
빗방울 하나 마른잎을 두드리네
절차
해설 위태로운 삶, 부활하는 이야기
권희철(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