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어떤시집’은 하나의 테마로, 하나의 시 세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형식의 소시집이다. 시인이 고른 특별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시집 전체를 직접 기획하며, 그 구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작업과 텍스트를 하나의 작품집으로 엮어 대체 불가능한 독자적 세계를 선보인다.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싱코페이션』을 통해 세상의 패턴화된 리듬에 포섭되지 않는, 특유의 시적 변주를 통해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온 김선오의 신작 『말 꿈 몸』이 종합 출판 브랜드 ‘북다’의 ‘어떤시집’ 시리즈 첫 권으로 출간된다.
이제까지의 기존 시집이 시인의 시 세계 전체를 조망하는 형식이라면, ‘어떤시집’은 그중 하나의 특정한 세계만을 분리해 그것을 이루는 수많은 의미의 층위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는 기획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시집 『말 꿈 몸』의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말’ ‘꿈’ ‘몸’이다. ‘꿈’은 꿈을 꾸는 ‘몸’과 긴밀히 동기화되어 있으며, ‘말’로써 언어화되지 않는 ‘꿈’은 결국 ‘몸’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꿈-말하기’는 개인의 체험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체험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방식이며, 그 최초의 ‘꿈-말하기’가 바로 태몽인 것이다.
특히 이 시집이 특별한 이유는, 시가 되기까지의 과정에 독자가 개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다는 점이다. 시편과 시편 사이에는 시인의 산문뿐만 아니라 아시아 최초의 트랜스젠더에 관한 대만 신문 기사, 태몽에 대한 사전적 정의, 꿈과 트라우마에 관한 논문, 시인의 어머니가 상상으로 써 내려간 태몽담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가 상호텍스트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는 마치 탈식민주의.페미니즘.소수자 문학의 ‘컬트 클래식’으로 평가받는 차학경의 『딕테』가 동시대적 감각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한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꿈이 투명한 실처럼 내게서 풀려나와
세계의 찢어진 부위를 부드럽게 봉합할 수 있기를……”
발화된 꿈으로 서로 연결되는 몸들
꿈의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몸과 몸 ‘사이’의 말들
“꿈 이야기를 해주겠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이 시집에서, 정작 시인은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서 나에게 태몽이 없었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이 시집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태몽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인은 “개인 서사의 빈터를 시로 다시 써볼 수 있을까”라는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우리 사회에서 “태몽은 한국의 전통적 성별이분법과 남아선호사상에 기초한 상징 체계를 공유하는 동시에 새로 태어나는 아이를 가족 공동체의 일부로 환대하는 역할을 맡”(「작업 노트」, 158쪽)고 있기 때문이다.
밤은, 강아. 너는 나일 수도 있겠지. 내가 너인 동안에. 강아, 너는 곡선일 수도 있겠지. 귤이거나 목련이거나 전구일 수 있는 만큼 너는 삼각형일 수도 있겠지. (……) 강아. 너는 얼룩덜룩하게 흔들리는 아프리카 어느 강가의 억새풀일 수 있듯이 어느 전쟁터의 총성일 수도, 총성을 듣고 놀란 새들의 짧은 울음일 수도 있지만. 죽은 이들을 외면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몸짓일 수도 있지만. 그 몸짓이 만드는 동심원 모양의 파장을 닮은 원형 계단 아니면 건물의 뼈일 수도 창일 수도 복도일 수도, 물소 아니면 딸기일 수도 이끼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_「불결한 무(無)」 부분
이 시집에 실린 모든 시편은 ‘개인 서사’의 발원이라고 할 수 있는 ‘태몽’부터, 몸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인 꿈의 장면들에 이르기까지 유려한 언어와 빛나는 상징들로 형상화한다. 꿈속에서 시적 화자는 “나는 나선형으로 깊어지는 물”(「불결한 무(無)」)이 되었다가, 황새가 물어 온 넓은 뼈에 깔리기도 하고(「둘」), 해파리가 안내하는 투명한 침실로 향하기도 하며(「길들이는 살」), “내가 흰 거북이라는 사실”(「소금 바다」)을 깨닫고 백사장을 기어가기도 한다. 이처럼 시인은 기존의 상징 체계를 활용해 부재하는 ‘태몽’을 시적 방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적 공동체에서 문화적으로 추방된 퀴어들의 서사를 옹호할 뿐 아니라 한국의 태몽 구술문화 역시 옹호함으로써”(「작업 노트」, 159쪽) 두 층위의 의미를 함께 복원하고자 한다.
몸을 구부리는 시간이 너의 꿈과 나의 꿈을 잠시 맞붙이고 있었지. 나의 꿈이 너의 몸을 기억하고 있었지.
_「합창」(4인의 시인이 공동으로 쓴 시) 부분
뿐만 아니라 꿈을 구술하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꿈들과의 연결을 시도한다. “꿈은 토막 난 비연속체의 형상이지만 우리는 구술 서사를 통해 꿈의 내용을 연속체의 위상으로 전환한다. 말해질 때 꿈은 현실과 연속되며 미래, 과거와 연속되고 순환하는 시간적 형상의 이음매가 된다.”(「작업 노트」, 158쪽) 그러므로 꿈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공동체 문화란 꿈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로 이루어지며, 그 목소리들이 중첩되고 교차하며 연결되는 것은 곧 또 다른 (꿈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꿈이 투명한 실처럼 내게서 풀려나와 세계의 찢어진 부위를 부드럽게 봉합할 수 있기를”(41쪽) 바란다는 시인의 문장은 무척 인상적이다. 꿈은 말과 몸을 연결하는 이음매이며, 타인의 몸과 몸 사이의 빈터를 메우는 이음매인 동시에 과거와 현실과 미래가 순환할 수 있게 하는 이음매로서 상처 난 자리로 되돌아가는 “시간의 나선 운동”이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기억해, 이게 바로 꿈의 촉감이구나…… 꿈의 온도는 인간의 체온이구나……”(「길들이는 살」) 이러한 ‘꿈’을 통한 연결의 상상력이 마침내 ‘회복’의 서사로 완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서 김선오에게 태몽이 없었다는 사실은
몸에 대한 꿈을 스스로 꾸게 한 듯하다.
논바이너리 젠더퀴어로서 자궁에게 달겨드는 백마 태몽
을 가진 나도 어쩔 수 없이
흰 말을 먼저 뛰쳐나가게 한 후
이 몸을 등장시키기 전에
꿈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꿈은 여전히 세상에 없고,
또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각자의 전설은 스스로 쓰는 게 맞다,
김선오처럼.
_이반지하, 「발문|전설은 셀프」에서
[목차]
불결한 무(無)
하나
둘
깃과 기척
부서진 시간을 부수는
소리
밝고 밝아 보이는 세계
길들이는 살
소금 바다
다 카포
환영의 맛
무빙 이미지-그리고 백 개의 휘어짐
부르는 불
Type it.
합창
내 꿈을 베껴
화이트보이스
작업 노트
발문 | 전설은 셀프 이반지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