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와 벨라 타르, 두 예술가가 함께 구축한 거대한 묵시록적 세계
1985년 발표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첫 장편소설 《사탄탱고》는 1994년 벨라 타르에 의해 러닝타임 439의 동명 흑백영화로 다시 태어난다. 크러스너호르커이와 벨라 타르가 함께 각본을 쓴 이 영화는 소설의 서사 구조와 리듬을 영화 고유의 시간과 움직임으로 재창조하면서 두 사람의 이름을 세계 문학사와 영화사에 함께 새긴 기념비적 성취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J. 호버먼은 〈사탄탱고〉를 “가장 위대한 영화이자,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작품 중 하나”라고 소개하면서, 이 영화를 사회적 공동체의 해체에 관한 어둡고 희극적인 알레고리로 평했다. 미국의 ‘필름 앳 링컨 센터’ 역시 이 영화를 벨라 타르의 국제적 돌파구이자 그의 결정적 성취로 소개한다.
소설의 차례를 영화의 뼈대로 고스란히 가져온 열두 개의 장은 탱고의 스텝처럼 앞으로 나아갔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 순환적 구조 속에서 영화는 사회주의 체제 말기 농촌 공동체의 붕괴를 배경으로 인간의 믿음과 조작, 헛된 희망과 반복되는 실패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붕괴해가는 공동체와 그 폐허 위에 등장한 거짓 구원자, 절망을 이용해 사람들을 다시 결집시키는 믿음과 기만의 구조를 응시한다.
크러스너호르커이와 벨라 타르의 협업은 단순한 원작자와 영화감독의 관계를 넘어선다. 두 사람은 〈파멸〉(1988)을 시작으로 〈사탄탱고〉(1994), 《저항의 멜랑콜리》를 원작으로 한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즈〉(2000),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 〈토리노의 말〉(2011)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예술적 동반자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종말론적이고 묵시록적인 텍스트는 벨라 타르 특유의 느린 호흡과 롱테이크, 흑백의 이미지, 움직임과 침묵의 영화 언어를 만나 새로운 예술적 형식으로 확장된다. 문학과 영화가 각자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도 이토록 오랫동안 긴밀하게 호응한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현대 예술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협업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2025년 노벨문학상 연회 연설에서 벨라 타르를 “색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색을 창조한 이”라고 칭했다. 이어 벨라 타르가 창조한 위대한 영화들에서 “그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아야 하는 죄인”의 목소리로 말하고자 했다고 기렸다. 이는 색을 지움으로써 오히려 세계와 인간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던 벨라 타르의 영화에 바치는 헌사였다. 벨라 타르가 타계한 직후 발표한 추모의 글에서는 그의 죽음을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거대한 상실”이라 언급하며, “어두운 영화관의 스크린 위에 시각적 마법을 함께 창조했던 친구”를 잃은 깊은 슬픔을 전했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
노벨위원회는 “파멸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을 수상 이유로 밝히며, 그가 현대 문학이 잃어버린 ‘예언적 언어’의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인간과 예술의 근원을 향한 그의 끝없는 탐구가 다시 한 번 세계의 언어로 되살아난 순간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파멸과 구원 사이, 언어의 경계 위를 걷는 문학의 예언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85년 데뷔작 《사탄탱고》를 통해 문단에 등장한 이후 인간 존재의 불안과 세계의 붕괴를 압도적인 문장으로 형상화해온 작가다.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과 강렬한 서사적 긴장으로, ‘읽는 수행’이라 불릴 만큼 독보적인 문체로 독자를 몰입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