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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천국 : 정유정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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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24479
ISBN
9791167374561
페이지,크기
524 , 140*210mm
출판사
출간일
2024-08-28
[출판사서평]
“생각보다 여기 재미있어. 복마전 같아.”

가상세계 롤라를 활용하여 의뢰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1인칭 가상 극장 ‘드림시어터’를 만드는 설계자 해상. 그녀는 드림시어터를 만들어낸 초창기 설계자 중 하나지만 최근엔 의뢰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해상에게 자신의 기억을 바탕으로 드림시어터를 만들어달라는 한 남자의 기이한 의뢰가 들어온다.

나는 그 남자의 집에 초대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머뭇대지 않고 출발했다. 부르면 찾아가는 게 내 일이었다. 지금 내가 이 어둡고 낯선 거리에 서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고. 이정표가 알려주기로, 이 거리의 이름은 만경로란다.
―본문 9쪽

의뢰자인 경주의 기억은 비참하다. 도수치료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 불운이 연이어 몰아닥친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의료사고로 직장을 잃고 설상가상, 자신과 싸우고 집을 나간 동생이 노숙자 촌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실의에 빠진 경주는 급여가 높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노숙자 재활시설 삼애원의 보안요원으로 일하게 된다. 이상기후로 인해 유빙이 떠내려 오는 서해의 외딴 곶. 천애고원에 놓인 삼애원에 들어온 경주는 노숙자 사이에 떠도는 소문을 듣게 된다.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 그리고 그 실험 대상으로 노숙자들에게 무작위 티켓이 발부되고 있다는 것. 그 티켓을 얻기 위해 노숙자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경주는 동생 승주의 죽음이 이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마무시하게 돈이 많은 미국의 한 생명공학 회사가 인간이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는 거야. 아니다. 죽지 않는 게 아니지.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새로운 인종이 된다지, 아마. 뭐든 가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될 수 있다는데 내 생각엔 그 정도면 신과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신이야. 아무튼 그 회사가 세계 최고의 게임회사와 손을 잡고 신들이 거처할 세상을 만들었다 이거야. 부자도 없고, 가난한 자도 없고, 병든 자도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영원한 천국.”
―본문 106쪽

죄책감에 시달리던 경주는 자신과 함께 보안요원으로 입사한 동기 박제이가 노숙자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비밀리에 찾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순찰을 돌던 경주는 삼애원 뒷산으로 향하는 의문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발자국의 끝, 새벽녘의 차가운 눈밭 위에서 숙소에서 자고 있어야 할 제이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견된다. 경주에게 업혀 병원으로 이동하는 중 제이는 의식이 오가는 상황에서 해상의 이름을 부른다.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서 롤라에 온 게 아닙니다. 그저 도망친 겁니다. 그것도 아주 성급하게. 이곳에 와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내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이해할 만한 실마리라도 찾지 않았을까.”
그 이해가 왜 그리 중요한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다. 우연하게 관계를 맺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삶은 롤라 극장에나 존재할 것이다.
“내겐 운명의 설계 없이 살아볼 기회가 필요해요. 도망치지 않는다면, 견뎌낼 수 있다면, 내가 그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아서.”
―본문 392쪽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 최후의 욕망, 야성

삶의 편리를 담보하는 기술을 넘어 예술과 철학의 영역에까지 진출한 과학기술을 목도하며, 우리는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뿐”이라는 작중 인물의 대사가 이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임을 절절히 느끼게 된다. 인간성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나 고평가 없이 이 시대를 표표히 마주한 작가는 “뭐든 할 수 있으며 아무도 죽지 않는 불멸의 삶에 대해. 결핍이나 불운, 갈등 같은 골칫거리가 없는 세상에 대해”, 그 아득한 미래에 대한 상상을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상상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가는 문학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아득한 영토에서 뜨겁게 손에 쥐어진 하나의 인간성을 마주한다.

소설 속 가상현실 롤라의 세계는 이 세계에 대한 거대한 비유다. 그러나 인간성은 영원히 아케이드 속을 헤매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드림시어터’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영원 속에서도 유희를 찾는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신에 대한 가장 엄정한 방식의 드림시어터를 설계하고자 하는 경주의 욕망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경주를 오독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의식이라는 외피에 가려진 ‘무엇’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벼랑 끝에 몰렸을 때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구원하려 했는지 기억했다면, 가슴에 칼이 박히는 찰나에 기어코 상대의 눈에 젓가락을 찔러넣은 걸 기억했다면 나는 사전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의 본성에 웅크리고 있는 ‘무엇’이 무엇인지.
―본문 523쪽

어떤 설계도 없는 삶을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그 날것의 세계에 뛰어들어 맞서보려는 욕망. 끝내 제 운명과 씨름하여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 인간 욕망의 끝에서 작가가 마주한 것은 바로 이 펄펄 끓어오르는 야성이다. 두꺼운 유빙 아래의 추운 심해에서,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서 정유정이 길어 올린 것은 골수를 쪼갤 듯 날카롭고 압도적이며 뜨겁다.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 이토록 선연한 이유다.

작가의 말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이겨내려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종종 야성을 잃어가는 시대에 사는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 자체를 조롱하거나, 가치를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흐름이 읽히기도 한다. 그렇긴 하나 우리는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개별적 존재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은 개별적 존재로서 나는 내 삶의 실행자인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쪼록 기억해주시기를. 우리의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우리 삶의 소중한 무기라는 걸.

[목차]
1장 해상, 롤라
2장 경주, 삼애원
3장 해상, 롤라
4장 경주, 삼애원
5장 해상, 롤라
6장 경주, 드림시어터
에필로그 롤라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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