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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은 진행 중 - 창비청소년시선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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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23729
ISBN
9791165702533
페이지,크기
136 , 145*210mm
출판사
출간일
2024-05-27
[출판사서평]
“나는 영 케어러입니다”
팍팍한 현실과 막막한 미래를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
우리 곁 청소년들의 초상

‘영 케어러(young carer)’는 가족이나 친척을 돌보는 청(소)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번 김애란의 시집은 다양한 역할과 상황이 얽히고설킨, 돌봄의 한가운데 던져진 ‘열여덟 살 영 케어러’로 살아가는 청소년의 삶과 현실을 조명한다.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나이에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어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 오락가락하는 할머니를 돌보는 건/전 과목 1등급을 맞는 것만큼 힘들”(「가족을 돌보는 방법」)고, 벚꽃을 “할머니가 토해 놓은 알약”에 빗댈 만큼, 봄비를 “거미줄 같은 비”(「벚꽃」)라고 묘사할 만큼 그들의 삶은 팍팍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견디기 힘든 건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속에서 무언가 훅 올라오려는 걸/꾹꾹 누르며” “난 괜찮아 난 괜찮아 난 괜찮아”(「난 괜찮아」) 되뇌어 보지만, 가족을 돌보느라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빠지는 동안/성적은 엉망이 되고/친구 관계도 엉망”이 되고 “어쩌면 미래도 엉망이 될”(「학교 가는 길」) 것 같아 불안하다.

할머니가 토해 놓은 알약 같은 벚꽃이 피고
이따금 거미줄 같은 비가
벚꽃 사이를 사선으로 내리긋는 봄날에도
나는 늘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처럼 긴장한다

할머니 숨소리처럼 가냘픈 햇살이
비쳐 들다가 슬며시 달아나 버리는 쪽방에서
삼단 요 위에 누운 할머니를 간호하는 일은
아르바이트할 때처럼 늘 긴장된다

벚꽃잎을 밟으며 떠나간 엄마는
새로 벚꽃이 피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벚꽃잎을 밟으며 공장에서 돌아와 누운
할머니는 새로 벚꽃이 피어도 일어나지 않고
벚꽃잎을 밟으며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새로 벚꽃이 흐드러져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얼마나 벚꽃이 지고 또 피어야만
할머니가 일어나실까?
밖에는 어서 내가 죽어야지 하는 할머니의
푸념 같은 벚꽃잎이 부질없이 흩날린다
―「벚꽃」 부분(22~23쪽)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위태로운 생활 속에도 이들을 돕는 따뜻한 손길이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슬쩍/박하사탕 한 줌 쥐여” 주고 “이제 됐어, 어여 가 봐” 하며 “가끔 내 사정 봐주는” 알바 사장님(「박하사탕」), “할머닌 걱정하지 말고 학교 갔다 와” 등 떠미는 “이 층 아주머니”(「학교 가는 길」), “학생이 학교는 맘 놓고 다녀야지요” 호소하며 주민 센터와 복지부와 교육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조금만 더 힘내자”라며 어깨를 토닥이는 담임 선생님(「담임」)은 이 아이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지 않도록 희망의 손이 되어 준다.

“이랬다저랬다 저랬다이랬다”
이른 나이 부모가 된 청소년들의 복잡다단한 마음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나보다 열일곱 살 어린 생명체”(「새싹」)를 받아 들고 부모가 된 청소년들에게도 세심한 눈길을 보낸다. ‘청소년 부모’가 된 아이들은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야?”(「살얼음판」)라며 확신하지 못한 채 불안감 속에서 “변화에 잘 적응하는 중”(「목소리」)이라고 스스로를 믿으며 마음을 가다듬고서 ‘학업과 살림과 육아’라는 “좌충우돌 리얼 투쟁기”(「놀고 싶은 마음」)를 써 나간다. “학교 다니고 알바 뛰고 아기 보고/숨 가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히는 하루하루”를 겪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새싹이 아름드리나무가 되듯 아기가 커 가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힘을 내 보고, 문득 “나야말로 더 자라서/나무든 뭐든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새싹」)라는 자각에 이르기도 한다.

편의점이든 식당이든 주유소든
힘들다 하면
미혼모 주제에
그만두겠다고 하면
고등학교도 안 나온 주제에
주제 파악 못 한다고 나무랍니다
주제 파악 그거
학교 다닐 때도 나를 괴롭히더니
학교 안 다니는 지금도
나를 괴롭힙니다
―「주제 파악」 전문(50~51쪽)

“우리는 우리대로 살기로 했습니다”
편견과 차별을 향한 당차고 야무진 목소리

시집 곳곳에서 우리는 편견과 소외의 그늘 속에서 “깊은 구덩이 속에 빠져 있는 기분”(「또 아침」)으로 삶을 꾸려 가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걸핏하면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걸고넘어지는 사장님에게 “저, 돈이나 훔치는 그런 애 아니고요/적성에 맞는 일 찾아보려고 그만두는 거예요”(「잡초」)라고 똑바로 말하고, “부모님은 뭐 하시나?” 물어보는 여자 친구 부모님께는 “보육원 출신입니다”(「화살 뽑기」)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립 준비금을 모아 변두리에/허름한 방 하나” 얻고서 “우린/그냥 우리대로 살기로 했습니다”(「우린 우리대로」)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믿음직스럽고, 청각 장애인 엄마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는 코다입니다”(「불쑥」)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의젓함이 배어난다.

높다란 벽을 담쟁이가 기어오른다
바람도 튕겨 나가는 시멘트 벽에
실핏줄 같은 꿈들이 촘촘히 박힌다
길은 어디에도 없다는 듯
견고하게 서 있던 벽이
제 스스로 길을 풀어 놓는다

팔을 길게 뻗어 이파리를 만져 본다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생생하게
파닥거리는 이파리
어느새 내 손도 파랗게 물든다
우주를 떠돌다 내려온
푸른 별 같은 손이 파닥거린다
팔이 심장이 허리가 다리가
마침내 온몸이
온통 푸른 한 그루 덩굴나무가 된다
―「푸르게 걷고 싶은 날」 전문(110쪽)

“넌 혼자가 아냐”
모든 열여덟들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시집

이 시집에는 꽃, 새싹, 나무, 화분 등을 활용한 식물적 상상력이 특히 눈에 띈다. “꽃은 물을 흠뻑 먹어야 예쁘게 피는 거란다”(「치매 걸린 아빠가 꽃을 가꾼다」)라는 말처럼 식물을 보살피고 가꾸는 일은 돌봄의 행위와 맞닿아 있다. 시인은 “알맞은 간격을 유지한 채/떨어져 자라는 것 같지만/저마다 뿌리를 길게 뻗어/뒤엉켜” 있는 버들잎 사시나무의 모습에서 세상의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며 “맞잡은 뿌리로/서로 물을 나눠 마시며/함께”(「아름다운 연대」) 성장하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열아홉에 한 살 못 미친 ‘열여덟’ 청소년은 이제 “어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는”(「걸음마」) 출발점에 서 있다. 나 하나를 돌보는 것도 벅찬 나이에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을 계속하며 성년을 맞이하는 그들에게 시인은 “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주문을 걸어”(「주문 걸어 주는 엄마」)라고 격려하며 미래 세대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하고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기를 기원한다.

버들잎 사시나무들은
사막의 뜨거운 모래 위에서
꿋꿋하게 자라지

알맞은 간격을 유지한 채
떨어져 자라는 것 같지만
저마다 뿌리를 길게 뻗어
뒤엉켜 있지

누군가 물을 찾으면
맞잡은 뿌리로
서로 물을 나눠 마시며
함께 살아가지

손을 내밀어 봐
넌 혼자가 아냐
―「아름다운 연대」 전문(86쪽)

[목차]
제1부 나는 영 케어러입니다
치매 걸린 아빠가 꽃을 가꾼다
이게 아닌데
난 괜찮아
현재 진행형
박하사탕
학교 가는 길
벚꽃
가족을 돌보는 방법
단짝
거짓말은 딱 질색
밥걱정
담임
화분 가꾸기
불꽃나리

제2부 너무 예쁜 나이, 열여덟
살얼음판
목소리
자진 폭로
따뜻한 손
배냇저고리
새싹
주제 파악
고딩 엄빠
이랬다저랬다
또 아침
용감한 그녀
놀고 싶은 마음
그런 건가 봐
엄지척

제3부 열여덟 살의 걸음마
네일 아티스트
책 읽기
걸음마
제라늄에게 말 걸기
잡초
화살 뽑기
우린 우리대로
그냥 걷자
그네 타기
누룽지
아름다운 연대

제4부 너도 필요할 것 같아서
주문 걸어 주는 엄마
그 여자
스프링 벅
까짓것
그냥 모르는 척
불쑥
이모
아깝지 않다
뒷담화
빈 둥지 증후군
슬기 보기
푸르게 걷고 싶은 날
달달
미소 천사를 보내며
가족

해설 | 오연경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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