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내가 너의 세컨드라고 생각하면 별론데
서로의 스페어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든든해.”
표제작 「아이 틴더 유」에서 솔은 데이팅 앱 틴더를 통해 호와 매칭된다. 대화를 나누며 서로 노아 바움백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실제 만남까지 이어지는데 그 자리에서 둘은 “연애에서 늘 속거나 버려진 쪽”(11쪽)이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며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그러면서 관계에서 어떤 가벼움을 지향한다.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지 말자는 것. 이 마음가짐 덕에 두 사람은 서로를 공모자처럼 느끼고 짧은 시간 동안 더욱 친밀해진다.
“이 짧은 시간을 촬영에서 매직 아워라고 해. 이때를 놓쳐버리면 큰일 나니까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긴장하고 집중하는데, 그때 기분이 진짜 좋아. 짧기 때문에 소중하지.”
짧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 말이 내 짧은 틴더 데이트들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모든 희소한 건 가치 있는 거야? 그럼 네 잦은 눈물은 가치가 작고? 하늘은 붉은빛과 푸른빛이 물감처럼 풀어지며 섞였다가 금세 어두워졌다. (27~28쪽)
「멍자국」에서도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난 서아와 영선의 관계가 그려진다. 서아와 영선은 가끔 만나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이. 두 사람은 살아오며 각자 과거 연인에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으니 언제라도 허물어질 수 있는 관계”(111쪽)로 지내려 한다. 하지만 만날수록 서로 간의 감정과 기대의 기울기 차이로 인해 관계는 조금씩 흔들리게 된다. 이 소설들은 성숙한 관계 맺기와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의 결에 대해 사려 깊게 담아낸다.
비로소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숨통을 틔워주는 귀한 욕망
“그 말에 우리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불기 전에」에는 사랑과 일에 있어서 실패했다고 느끼는 인물이 등장한다. 승주는 자신이 10년 전 제작한 다큐멘터리 <플레이백>이 독립영화 기획전에서 다시 상영된다는 연락을 받고 초청되어 엄마 인자와 함께 부산에 간다. 부산은 이혼한 전부인인 민주가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승주는 그곳에서 “인생을 걸었다고 생각한 영화가 엎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86쪽)나간 일을 곱씹으며 그 수많은 어쩔 수 없음을 담담히 직시한다. 하지만 함께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갔지만 바람이 멎어 포기하려던 때 엄마인 인자한테서 귀한 욕망을 발견한다.
“승주야. 내일 비행기 밤늦게도 있지?”
“응. 왜. 패러글라이딩 아쉬워서?”
“난 이번에 온 김에 꼭 했으면 좋겠어.”
그 말에 우리 사이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건 인자 씨에게서 보아오지 못했던 확고한 태도였다. 그런 욕망은 귀한 것이었다. 아주 드물게 귀한 것이었다. (71쪽)
이처럼 소설은 “갑자기 안 하던 짓”(56쪽)을 하고 싶어 하는, 그간 몰라왔던 엄마의 소소한 욕망을 귀히 여긴다. 이러한 종류의 욕망은 갑갑한 사회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우리를 해방시키고 숨통을 틔우는데, 정대건의 소설이 성기고 느슨한 관계 맺음에 주목하여 “그 관계의 고유한 쾌락 원칙들을 포착”한 것처럼 이러한 욕망의 귀한 발견은 “이 사회의 단단하게 짜인 욕망의 그물을 느슨하게 만들며 우리가 그간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쾌락을 느끼”(해설, 김보경 문학평론가)게 해줄 것이다.
<책속에서>
‘184 76 32’. 키, 몸무게, 나이만 적혀 있는 프로필. 집에서 2km 떨어져 있던 호와 틴더에서 매칭된 건 지난밤이었다. _「아이 틴더 유」, 9쪽
[Chloe : 저는 왕십리 쪽 살아요.]
틴더 메시지였다. 오호, 클로이도 만나려고 하셨어? 그 메시지는 우리 사이에 감춰져 있던 사실을 드러냈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에게 ‘라이크’를 눌렀고, 클로이를 만나서도 이런 외로움을 토로했을 거라는 것, 서로에게 스페어처럼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라는 것 말이다. _「아이 틴더 유」, 12쪽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는 있지만,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어려웠다. 이제 나는 붙였다 뗐다를 많이 해서 접착력이 떨어진 칫솔걸이 같았다. _「아이 틴더 유」, 17쪽
“어쩔 수 없지…….”
끝내 지친 내가 민주에게 말했다. 나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사람을 달리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끝이었다. 내가 노력을 그만두니 우리 관계가 그토록 쉽게 끝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_「바람이 불기 전에」, 67쪽
관객이 없어서 극장이 사라지는데, 어쩔 수 없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난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 바람이 불지 않는데, 어쩔 수 없네. 수많은 어쩔 수 없음에 숨이 막혔다. _「바람이 불기 전에」, 86쪽
“자, 갑니다. 앞으로 뛰어가세요!”
대장이 다급하게 외쳤고 인자 씨는 떠나는 사람처럼 내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 먼저 간다.” _「바람이 불기 전에」, 88쪽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남자와 덜컥 여행을 가고 버스에서 서로를 깨물고 있다니. 서아는 자신의 모습이 참 낯설었고,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게 기분 좋았다. _「멍자국」, 92쪽
영선 씨는 남들처럼 하는 걸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군데라도 가야죠.
물회 별로였잖어요. 우리 그냥 남들 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_「멍자국」, 98쪽
이대로가 좋지 않아요.
이대로도 좋죠. 좋은데…….
전 복잡해지고 싶지 않아요. 영선의 말을 자르듯 서아가 말했다. _「멍자국」, 112쪽
내가 일을 벌이거나 먼저 다가갈 줄은 모르지만 그래도 편지 하나쯤은 쓸 수 있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일상에서 얼굴을 알고 지내는데 내 글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보다, 이 글을 읽을 이름 모를 독자분들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_「네모가 되기를 빌고 빈 세모」, 129쪽
■■■ 트리플 시리즈 소개
[트리플]은 한국 단편소설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 편의 소설이 한 권에 모이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일반적인 소설집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여러 흥미로운 시도들을 할 수 있으며 독자는 당대의 새로운 작가들을 시차 없이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매력적인 세계를 가진 많은 작가들이 소개되어 ‘작가-작품-독자’의 아름다운 트리플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목차]
아이 틴더 유
바람이 불기 전에
멍자국
에세이 네모가 되기를 빌고 빈 세모
해설 가볍게, 바람 따라 _김보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