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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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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01765
ISBN
9788932043500
페이지,크기
268 , 128*188mm
출간일
202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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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그 무엇도 그들이 공유했던 서로의 온기와 감촉,
그 봄의 밀도와 향기만큼은 빼앗아 갈 수 없으리란 사실을”
오해와 이해 사이에 쏟아진 한 움큼의 선명한 온기

소설집을 열면 가장 처음 마주치는 작품이 「아주 환한 날들」이다. 어두운 날의 반어적 표현 같기도 하고 무방비한 빛을 머금은 희망을 예고하기도 하는 듯한 이 소설은 일흔이 넘은 여성 옥미에게 느지막이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을 펼쳐 보인다. 딸과는 사이가 멀어진 지 오래인, 외롭게 홀로 지내는 그녀에게 사위가 문득 앵무새를 들고 찾아온다.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아이들 때문에 집에 들였지만 막상 아이들이 무서워해서 키울 준비가 될 때까지만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낯선 앵무새와의 동거를 시작한 옥미가 새를 돌보면서 딸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하며 느끼는, “새가 닿았던 자리만큼의 크기로 따스”(p. 36)한 감정을 섬세하게 구현해낸다.

“딸은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걷고 있었다”(p. 109)라는 첫 문장이 암시하듯 「흰 눈과 개」는 사이가 좋지 않은 딸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거의 8년 만에 조우했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딸이 자신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빠인 ‘그’는 여전히 못마땅하다. 딸 역시 자신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스위스로 부모를 초대했으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한다. 오해로 인해 서로의 자리를 비워둔 채 지나온 세월로 되돌아가듯 설원 위에서도 그들은 다툴 뿐이다. 그러다 그들의 감정이 눈 녹듯 풀리는데, 절정과 결말의 틈에 놓인 “온몸으로 뛰어오르는 생명력”(p. 141)을 목도하면서부터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는 눈 덮인 그곳엔 관계의 균열을 무화시키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있다.

「빛이 다가올 때」와 「봄밤의 우리」는 우정과 사랑이 깃든 소설들이다. 또한 그때는 몰랐으나 시간이 지나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기억의 편린에서 찾아내 비로소 반짝이는 그것을 움켜쥐는 길을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다고 예단했던 일들이 결국 나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음을 깨닫는 이 여정은 “발을 담그기만 해도 휩쓸릴 급류인지, 서서히 젖어갈 빗줄기인지 미처 알지 못하는 채로”(p. 88) 기꺼이 백수린식 사랑 속에 빠져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잃거나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안에 숨어 있음을, 그러므로 모든 오해를 거두고 언제든 다시 환한 빛과 온기를 만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을 담은 봄밤이 짙은 향기를 머금을 꽃잎이 되어 쏟아진다.


“그건 얼마나 달콤한 일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었을까”
존재했던 삶의 부재가 그려놓은 마음속 드라마

백수린은 허무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 사소한 계기로 말미암아 생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다. 삶의 행로를 방해하는 불순물로 치부됐던 불편한 기억, 복잡한 감정, 경직된 갈등의 실타래가 풀릴 때, 백수린은 그 실들로 다시 욕망하는 법, 다시 슬퍼하는 법, 요컨대 다시 사랑하는 법을 기워 인생 뒷면에 찬란한 삶을 수놓는다. [……] 이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주어진 빛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빛이기 때문이다. 사라지지 않는 빛을 만드는 백수린은 한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다. 암흑 같은 마음을 살리는 소중한 백야다.
─박혜진, 해설 「잘 적응된 허무」에서(pp. 263~64)

『봄밤의 모든 것』의 화자들은 저마다 커다란 상실을 하나씩 품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존재인 딸과의 갈등, 죽음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과 이웃, 각자의 삶 때문에 자연스럽게 멀어진 친구, 사랑했던 애인과의 이별. 소설집 후반부에는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세 편을 연작소설의 형태로 재구성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상실감’을 더욱 깊이 있게 그려냈다.
「호우豪雨」의 소희는 도서관에 가는 것과 계절이 바뀌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전업주부다. 한때 작가를 꿈꿨을 만큼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상상 속 이야기로 빠져들기를 즐기는 그에게 죽음은 두렵지만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소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밖 허름한 주택가의 파란색 대문 집에 놓여 있던 모든 게 사라진 것을 본 후 노인의 죽음을 상상하며 밤새 뒤척이는 까닭은,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고 상실은 늘 곁에 머무는 그림자와 같기 때문일지 모른다.

다음에 놓인 「눈이 내리네」는 소희의 대학 친구 다혜의 이십대 시절을 회고하며 시작한다. 엄마의 먼 친척인 이모할머니의 하숙집에 머물며 열정 가득한 대학 생활을 시작한 다혜는 학교에서 연애는 물론 수업과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집에 돌아오면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아침잠 없는 칠십대 이모할머니와 생활했는데, 일찍 일찍 다니라는 이모할머니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다혜에게 사랑의 훼방꾼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지나 “젊음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불현듯 자각하게 되는 날”(p. 201) 다혜는 할머니 생전 마지막으로 함께한 날을 떠올린다. 열정 가득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생(生)의 중반기에 들어서며 더는 죽음을 쉽게 여길 수 없어진 마음들이 작가가 그려낸 부재와 상실의 설계도와 함께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앞선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한자리에 모인 여행지 리조트를 배경으로 각자의 과거와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가 촘촘하게 구성된 인상적인 작품이다. 주미, 소희, 다혜 그리고 화자인 ‘나’는 이제 사십대 후반이 되었다. 그들의 대학 동아리 시절 이야기는 그들을 잠시 청춘의 그날로 되돌려놓기도 하지만 청춘이 얼마나 멀어졌는지 실감하게도 한다. 가족 누군가가 세상에 없거나 아이가 곧 대학생이 되는 그들에게 주미는 11년 전 독일에서 겪은 미스터리한 사건을 이야기한다. 그 끝에서 그들은 죽음으로 점점 다가가는 삶의 허무와 공백의 자리에 “상처 하나 없이, 기적처럼”(p. 245) 날아오를 수 있는 희망을 심어놓는다.

더 올곧고 선명하며 “강직한 빛”(해설, p. 263)으로 찾아온 백수린의 소설들은 상실과 긴 허무의 밤을 걷는 모두에게 새봄을 선사할 것이다.

저자의 말

오래전 썼던 소설들을 읽다 보면 일기장을 다시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허구의 이야기인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내가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시절 나를 강렬히 사로잡고 있던 감정이나 질문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너무나도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여름의 빌라』(문학동네, 2020)를 출간한 직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4년에 걸쳐 씌어졌다. 그중 가장 먼저 발표한 「흰 눈과 개」를 썼던 봄과 소절집을 묶는 현재 사이, 내 개인의 삶에도 우리 사회에도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난 탓에, 소설을 썼을 당시의 마음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과 별개로, 교정지를 읽는 내내 아주 가마득히 먼 과거에 쓴 소설들을 다시 읽는 듯한 기분이들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쓴 소설들에 상실 혹은 상실 이후의 풍경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눈이 내리거나 쌓여 있는 장면이 유독 많다는 것은 교정지를 읽던 중에야 깨달았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를 제목을 정하며 눈이나 겨울이 들어간 단어와 문장을 오랫동안 곱씹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이 소설집의 제목은 ‘봄밤의 모든 것’이 되었다. 유난히 겨울의 풍경이 많은 이 소설집에 ‘봄’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을 붙이며, 최근 내가 쓴 산문의 한 구절(“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볕을 찾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할 수 있다”)을 변형해 여기에 적어두고 싶다. 우리의 삶이, 이 세계가, 겨울의 한복판이라도 우리는 봄을 기다리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봄이 온다고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고. 그런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썼다. 소설을 쓰는 사람인 한, 계속 그런 마음으로 써나가고 싶다.
[……]
어느새 네번째 소설집이다. 소설을 쓰는 일은 좀처럼 쉬워지지 않지만, 소설을 쓰는 기쁨 역시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봄을 기다리며
백수린

[목차]
아주 환한 날들
빛이 다가올 때
봄밤의 우리
흰 눈과 개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해설 | 잘 적응된 허무 · 박혜진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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