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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 앞에서 Paperback
소설가 최은영이 데뷔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산문집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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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360108
ISBN
9791141603373
페이지,크기
276 , 133 * 200 mm
형태
Paperback
출판사
출간일
2026-04-30
[출판사서평]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는 그의 모든 것이 온다

거짓 없이, 감춤 없이, 후회 없이
담대한 용기로 빛나는 순백의 글쓰기

『밝은 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첫 산문집

소설가 최은영이 데뷔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산문집을 출간한다. 2024년 가을부터 2025년까지 써내려간 6편의 새로운 원고에 기존에 발표한 4편의 원고를 고치고 더해 완성한 책으로, 한 편 한 편이 단편소설에 가까운 긴 호흡으로 이어지며 최은영 특유의 “정서적 중량감”(문학평론가 서영채)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로 커다란 주목을 받은 이후 각별한 관심과 기대 속에서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장편소설 『밝은 밤』 등을 선보이며 견결한 소설세계를 만들어온 작가는 자신의 첫 산문집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백지 앞에서』는 작가가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다시 혼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착취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시절에 대한 기록부터 갑상선암 진단을 받아 병원을 자주 오가야 했던 지난겨울의 이야기,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짧지 않은 시간 지속되었던 외모에 대한 강박, 동물권과 세월호 참사 등의 사회문제를 아우르며 우리가 서로 연루되어 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는 목소리까지, 최은영이라는 한 명의 작가이자 개인을 이루는 것은 무엇인지 하나씩 꺼내어 보인다. 특히 표제작 「백지 앞에서」는 꽤 오랜 시간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여겨온 작가의 뜻밖의 고백을 통해 삶을 추동하고 치유하는 글쓰기의 의미를 헤아리게 한다.

최은영의 글쓰기는 ‘순백’을 닮았다. 이때의 순백이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을 가리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즉, 깨끗하고 맑은 내용을 담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편에 놓인, 얼룩과 그림자가 새겨진 상태를 숨김없이 전부 보여주고자 하는 결기에 가까운 태도를 뜻한다. 우리 각자의 내밀한 비밀과 상처는 남몰래 숨겨둔 일기장에,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인터넷 검색창에, 조용히 내뱉는 혼잣말 속에 흘려보내는 게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최은영의 진실은 바로 여기 이 산문집에 온전히 담겨 있다.

최은영은 이번 책을 준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세이에서 독자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인간인 나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타인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는 기분을 느낀다”(10쪽)고.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고 난 우리도 그 어느 때보다 최은영 작가가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의 밝은 면모만 취하는 게 아니라 그의 어두움, 슬픔, 고통 또한 함께 받아들이는 과정임을. 그런 관계의 본질을 『백지 앞에서』는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의 담백한 담담함으로 보여준다. 무엇도 감추지 않고 온전히 드러내는 투명한 힘, 그 힘으로 최은영이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책 속으로]

나를 추동하고 나아가게 하는 내 안의 이야기,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삶의 방식, 쓰지 않으면 어째서인지 약해지고 마는 나의 존재.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백지 앞에 서게 한다. _「백지 앞에서」, 49쪽

글쓰기는 나 자신을 계속 대면하게 하여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게 했다. 그리고 언어로 그 취약성을 드러내기를 원했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가면을 깨뜨리기를 원했다. 그건 내가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 호감과 비호감의 대상을 넘어선 나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진짜가 되고 싶었다. 그게 어떤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_「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 64쪽

사람들의 말처럼 상처를 잘 극복하여 성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타격을 받더라도 잘 맞서 싸우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한다’ 같은 말이 옳다고 여길 수 있다면. 내가 경험한 고통은 나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를 강하게 하지도 않았다. 어떤 상처는 내 마음의 구조를 비틀어 내가 원하지 않은 모양으로 바꿔놓았고, 사람을 덜 믿게 만들었다. 마음의 힘을 고갈시켜서 나를, 타인을 사랑하는 힘을 앗아가기도 했다. _「긴 겨울」, 92쪽

내 진짜 삶은 언젠가 어떤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불완전해 보이는 여기에 있다. _「긴 겨울」, 97쪽

4월은 변덕이 심한 달이다. 하루는 패딩 코트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춥다가 다음날에는 바람막이만 입어도 덥고, 열기에 가까운 온기가 가득한 오후 뒤에 갑작스럽게 차가운 비가 내리는 식이다. 그런 와중에도 나무와 풀은 아랑곳없이 새잎을 낸다. 나는 그런 4월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_「천천히 달리기」, 115쪽

언제쯤 삶은 결코 통제할 수 없으며 삶의 사건들은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모든 규칙을 깨고 펼쳐지는 삶의 불규칙성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연약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일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_「천천히 달리기」, 125쪽

외로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혼자‘여서’ 외로운 것은 아니지만 혼자‘여도’ 외로울 수 있다. 함께‘여서’ 외로운 건 아니지만 함께‘여도’ 외로울 수 있듯이. _「혼자 사는 연습」, 156쪽

그래서 나는 나의 사소한 이야기를 글로 쓴다. 이 이야기가 특별하거나 대단해서가 아니라 나의 진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상처뿐만 아니라 당신의 상처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_「못생겼다는 느낌」, 178쪽

어려서는 욕망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나를 욕망의 대상으로 두는 상황이 더 익숙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 사랑받을 만한 사람, 호감 갈 만한 사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지 않는 ‘못생김’이라는 것을 내 얼굴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내가 외모에 집착할수록 나는 점점 더 나로부터 멀어져갔다. 나는 나를 그저 하나의 외적 대상으로 축소해 바라봤다. 그것도 신랄하게 비난하고 뜯어고쳐야 할 대상으로. 욕망의 대상에서 욕망의 주체로 나아가려 했던 노력이 내가 경험한 성장의 과정이었다. _「못생겼다는 느낌」, 178~179쪽

누군가는 잊고, 누군가는 정당화하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그 기억을 소화하지 못한 채로 꿈속에서 빈 교정을 걸어 다닌다. _「그때의 은희들에게」, 186쪽

마음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다. 비록 그늘지고 아픈 마음이더라도 그 마음을 억누를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데 억지로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된다. _「그때의 은희들에게」, 197쪽

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화학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작가로 다시 태어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기억하기를 선택했다.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침묵을 깨뜨리기로. _「174517」, 221쪽

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사회의 인간성에 대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곧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이다. 애도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일이자 동시에 인간의 권리이기도 하다. 애도의 기간과 방식은 오로지 애도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_「그날 이후」, 237쪽

이 모든 일이 한 마리의 고양이를 사랑하면서 시작됐다. 고작 한 마리의 고양이를 사랑했을 뿐인데 세상의 모든 동물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_「인간과 동물 사이」, 262쪽

[목차]
프롤로그│버려진 일기장에게 … 007

백지 앞에서 … 021
당신이 더는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기분 … 051
긴 겨울 … 067
천천히 달리기 … 099
혼자 사는 연습 … 135
못생겼다는 느낌 … 159
그때의 은희들에게 … 181
174517 … 201
그날 이후 … 227
인간과 동물 사이 … 249

에필로그│나의 거의 모든 것 …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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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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