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24개의 물줄기, 하나의 큰 강이 되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전통적인 전기소설과는 다르다. 이 작품은 총 2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은 독립된 단편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분절된 장면들은 흩어지지 않고 백범 김구의 삶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수렴된다. 작가는 그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대신, 시간의 순서를 넘나들며 ‘생존-희생-감당-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의 구조 속에 배치한다. 사건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 구성은 영웅의 업적을 나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틀이다.
이 작품에 가공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은 사료와 기록에 근거한다. 그러나 작가는 기록을 설명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축약된 서술과 절제된 문장은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은 선악의 구도로 단순화되지 않고, 선택의 무게로 제시된다. 그 결과 독자는 ‘위대한 인물’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의 장면 앞에 함께 놓인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백범을 우상으로 숭배하지 않고, 책임을 감당한 인간으로 다시 세운다. 이것이 이 소설이 취하는 가장 분명한 태도다.
특히 이 소설은 백범의 삶을 ‘성공의 역사’로 정리하지 않는다. 분단을 막지 못한 정치가, 해방정국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지도자, 끝내 암살로 생을 마친 인물이라는 결말까지 숨기지 않고 끌어안는다. 그러나 작가는 패배를 변명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할 걸 알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백범의 단호한 역사관을 드러내준다.
“내가 북한에 가서 실패하면 실패한 기록이 남을 것이고, 그런 시도가 거듭되면 누군가는 그 실패를 넘어설 것이다.”
남북회담을 앞두고 백범이 남긴 이 말에는 역사와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인의 자세가 담겨 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승패를 넘어, 역사의 격동 속에서 꺾이지 않은 한 인간의 태산부동(泰山不動)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 소설에서 이만큼 주인공의 성격이 강력하게 살아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왜 지금, 백범인가
『백범 강산에 눕다』는 ‘위인의 복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백범 김구의 삶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열, 이념의 갈등과 권력의 다툼은 먼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상황만 조금 바꾸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가 신뢰를 잃고, 공동체의 방향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떠한 기준을 세우고 선택해야 하는가? 이 작품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거창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인간이 끝까지 붙들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한다.
언론인으로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명과 암을 지켜본 임순만 작가는 10여 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백범을 역사 속에서 끌어내 오늘의 세계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지도자의 용기란 무엇인지, 실패를 알면서도 기록을 남기려고 했던 그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우리는 빠르게 편을 가르고,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는 믿고 싶은 주장만 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나 성공이라는 물질적 가치가 앞설수록 윤리의 기준은 뒤로 밀려나기 쉽다. 이런 현실 앞에서 백범 김구가 일생을 통해 보여주는 태도는 더욱 선명하다. 그는 유리한 편에 서기보다는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게 선택했고, 성공의 가능성보다는 역사에 남을 책임의 무게를 먼저 생각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우리에게 다시금 묻는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목차]
1 내 목숨을 드리다 9
2 그대의 목숨을 받다 35
3 물소리 65
4 굶주린 자는 먹인다 93
5 새야 새야 파랑새야 121
6 남도방랑 149
7 서대문감옥 179
8 상해 뒷골목 209
9 문지기는 집을 지킨다 235
10 밤에 쓰다 265
11 김구 암살작전 289
12 지켜낸 사람들 313
13 남의 땅, 남의 하늘 아래 341
14 대가족 367
15 정직한 거부 393
16 길 위의 젊은이들 415
17 빛의 방향으로 441
18 고향 개도 만나면 반갑다 467
19 비밀문서 489
20 갈라지는 땅에서 509
21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537
22 겨레의 약속 563
23 비원(悲願) 591
24 강산에 눕다 617
주 643
참고문헌 651
역사의 별이 된 사람들│작가의 말 6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