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성여관에 좋은 점이 있다면 뒷문이 있다는 사실이다. 손님들이야 앞문으로 들어왔다가 앞문으로 나가지만 우리 식구들은 뒷문으로 잘 다녔다. 특히 누나와 나는 절대로 뒷문만을 이용하였다.
- 찌르레기 아저씨의 어디가 괜찮은지 묻는다면 사실 할 말도 없다. 어디가 어떻다고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 그냥, 아무 이유도 댈 수 없지만 그냥 내 마음에 어긋나지 않고 역겹지 않으면 정답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이 ‘그냥’에 한해서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여태까지 살면서 특별하고 거창한 사람이나 물건이 흡족하게 제 몫을 다 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을 쫓아다니다간 시간만 헝클어놓기 딱 알맞다.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나의 ‘그냥’을 믿는다.
- 이거야말로 누나의 눈이 어떻게 잘못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 그것이 빚어내는 색깔, 멋진 것에는 즉각 감응하던 그 경이로운 감수성은 대체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 분해서 고기를 씹어대며 울었다. 눈으로는 눈물을 씹고, 입으로는 고기를 씹었고, 가슴으로는 늙은 남자를 짓씹어댔다. 너무 많은 것들을 씹어대느라 식사를 마쳤을 때는 기운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 그가 말했었다. 의분(義憤)이 많은 땅에 평화가 있다. 나는 붉은 피와 그을음으로 더럽혀진 그의 얼굴을 보며 자신에게 되물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우리는 왜 싸우는가.
- 누나는 꼭 올 것이다. 나는 그것을 믿었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누나와 형, 그리고 내가 나성여관에 품고 있는 사랑을. 그것은 때로 누추했고 더러는 끔찍했으나 그보다 더 많이 오밀조밀했고 아늑했었다. 우리들의 사랑 속에 담긴 분노와 증오와 슬픔 없이 어찌 이처럼 질긴 애정의 끈을 묶어낼 수 있었으리.
[목차]
1. 나성여관_7
2. 길 위의 친구들_55
3. 기도·빵·석양_117
4. 고통의 우물_187
5. 40세의 노트_243
6. 장마_311
7. 철새들도 집을 짓는다_365
8. 복수_421
9. 잘 가라 밤이여_475
10. 눈꽃_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