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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 창비청소년시선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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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23700
ISBN
9791165701123
페이지,크기
120 , 145*210mm
출판사
출간일
2022-07-15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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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수채화처럼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다

피아노를 치듯
툭, 톡
비가 왔으면 좋겠다

길고양이에게 물을 주고
초록을 더 진한 초록이게
노랑을 더 빛나는 노랑이게 해 주기를

사람들이
저마다 알록달록한 우산을 날개처럼 펴고
웅덩이를 건널 때는 띄어쓰기하듯이
새처럼 톡, 톡 건너면 좋겠다

(중략)

비가 그치고 나서
세상이 더 맑고 분명해 보인다면
좋겠다, 좋겠다
―비가 왔으면 좋겠다 부분(52~53쪽)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재는 ‘마음의 수학’

시인은 “사람은/세상에서 넓이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도형”(넓이를 구하는 공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시인은 “마음의 수학”(고명재, 해설)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넓이를 구하는 공식)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구하려고 한다. ‘마음의 수학’에는 공식도 정답도 풀이도 없다. 다만 골똘히 사람을 생각하는 사랑만이 담뿍 담겨 있다.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을 만큼”(가까운 사이) 포옹하는 사랑의 온기로 정성을 다하여 마음의 넓이와 깊이를 재다 보면 어느새 “어둠 속에서 견뎌 온” “나도 모르는 마음”이 “세상 밖으로 드러”(노랑)나면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사랑받는 일) 속삭이는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울린다. “사랑해라고 써놓은 바람개비”가 “나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보내 버릴 바람”(바람개비 정원) 속에서 돌고 돈다.

직사각형의 넓이는 가로×세로
삼각형의 넓이는 밑변×높이÷2

그렇다면 나의 넓이는 어떻게 구해야 할까

사람은
세상에서 넓이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도형이야
좀 더 크면
나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알게 될까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곱한 다음
너와 마음을 나누면
알 수 있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나의 넓이를
―넓이를 구하는 공식 전문(10쪽)

‘너의 속’을 들어 주는 예쁜 귀

흔히 청소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꿈을 잃은 채 마음을 납작하게 눌러 버리는 공부와 모든 걸 점수로 바꿔 버리는 서열 경쟁에 시달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수많은 검은 머리카락 속에 있는/흰 머리카락 한 가닥”처럼 “뭐든 특별한 데가 있어야지”(오디션) 선택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내 속에는 많은 것들이 있는데, 개성이나 소질은 아예 무시해 버리고 단지 숫자(성적)만으로 나의 가치를 매기곤 한다. “참았던 걸 다 쏟아 내” 버리듯 “고래고래/노래를 부르면/입에서 고래가 튀어나올 것”(우리 둘이)도 같은데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현실에서 청소년들은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을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 “마음을 들어 주려는 예쁜 귀”(해설)로 갈등과 방황 속에서 헤매는 청소년들의 답답하고 아픈 ‘속(마음)’을 귀 기울여 듣는다.

청진기로 너의 속을 듣는다

깊은 여름밤 여치 울음을 듣는 기분으로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장마철 빗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쿵쾅쿵쾅 윗집 발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잔소리를 듣는 기분으로
드럼 비트를 듣는 기분으로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한 어린아이가 훌쩍, 훌쩍 눈물을 참는 소리가 났다
―가슴에 두 번, 배에 한 번, 등에 한 번 부분(31쪽)

‘나’의 모든 면을 사랑할 거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양한 면(面)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청소년들의 삶이야 더 말할 나위 없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만의 정답이 없고, 저마다 다채롭게 빛나는 것이다. 그리고 주사위 놀이처럼 어떤 면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는 기대와 희망이 움트기 마련이다. 살아가다 보면 “못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고 “못날 수도 있”고 “못생길 수도 있지”(못)만, 그것이 잘못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비록 “남들보다 앞서가지도 못하고/겨우 한 걸음이 전부”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내 모든 면을 사랑”(나의 어느 면이든)하자고 시인은 말한다. “힘든 점 부족한 점”을 “하나도 안 버리고 낑낑 온 힘을 다해 걸어가” 마침내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청소년들에게 “넌 정말 멋진 점투성이야”(난 너의 그런 점이 좋아)라고 응원을 보낸다.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면은 6
나를 세상에 던져 놓고는 6이 나오길 기대한다

1이 나온다면 혼자
친구도 없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나를
사랑할 사람이 있을까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들보다 앞서가지도 못하고
겨우 한 걸음이 전부지만
내 모든 면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함부로 나를 굴려도 괜찮았다
6이 나와도, 4가 나와도, 2가 나와도
때로 혼자여도 좋았다
―나의 어느 면이든 전문(58쪽)

‘공’이 뒤집히면 ‘운’이 되듯이

시인은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말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말놀이 솜씨가 뛰어나다. 이 시집에서도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언어유희가 돋보인다. “공은 뒤집히면 운이 됩니다”(벽돌 깨기 게임 2), “나는 ㅁ 위에 있으면 남이 된다”(ㅁ 위에서)처럼 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고, “힘든 점 부족한 점 그냥 ● 이놈의 점 점점 무거운 점을/짊어지고 다니는 무당벌레”(난 너의 그런 점이 좋아), “잘 지내는 줄/행복한 줄/곧 올 줄/줄줄/흐르는 눈물 두 줄”(얼마나 먼 줄), “이곳을 힘주어 말하면 이 꽃이 되듯이”(조용히 자라요), “이 약이/이야기/다 듣나 보다”(약이 듣는 것들)처럼 소리가 같은 단어나 구(句)를 절묘하게 연결하여 말맛을 더한다. “턱 밑에/ㄷ을 심어 놓”(턱 밑에 ㄷ 심기)으면 ‘털’이 되고, “의자에서 삐죽 나온 나사가 빠지면” “살고 싶다는 의지”(나무 의지)가 되고, “검은 말도 흰 말도 아니어도/좋은 말이라고/앞으로는 그런 말을 하겠다”(내 안에 둘이나)는 다짐 속에서는 말(馬)과 말(言)이 함께 어울려 시를 읽는 재미를 더한다.

네도 아니고
응도 아니고

ㅇㅇ
이라는 대답은
동그랗게 뜬 두 눈이다, 아니
한숨 쉬는 콧구멍이다, 아니
데굴데굴 굴러오는
구슬 두 개다

뭐든 물어보면
대답 대신 언제나
ㅇㅇ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보는
사춘기
―ㅇㅇ 전문(69쪽)

우리는 같은 향기가 나

“사람이 자꾸 날카로워지는 게 싫다”(나를 깎는 너)고 말하는 시인은 끊임없이 사랑을 이야기한다. 마음속에 “좋은 말을 입력하면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생각을 한다”(AI-4)고, “가슴에 두 번, 배에 한 번, 등에 한 번”, 때로는 수십 번 수백 번 귀를 기울여 “너의 가장 깊은 곳”(가슴에 두 번, 배에 한 번, 등에 한 번)에서 숨 쉬는 마음을 듣는다. 몸은 떨어져 있어도 “민들레가 민들레끼리 텔레파시를 주고받듯이”(이 꽃길 걷기)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물 흐르듯 이어진다. “피 검사를 안 해도 알 수 있”는 우리는 “그런 사이”(RH null)이다. “같은 향기가 나”는 우리는 그렇게 “조약돌처럼 매끈매끈해지”는 마음으로 “사랑받는 기분을 알아 가”(비누는 점점)면서 살아간다. 시인은 수학 공식처럼 딱 잘라 말하지 않는다. “수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을 묻고 보여” 주는 이 시집은 “연한 심장에 귀를 기울이는 예쁜 책”(해설)이다. 시집을 다 읽고 나면 ‘나’와 가족과 친구와 이웃 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반짝, 피어날 것이다.

할머니 손은 라벤더
할아버지 손도 라벤더
엄마 손도 라벤더
아빠 손도 라벤더
동생 손도 라벤더
내 손도 라벤더

손잡을 일 별로 없어도
두 손에 라벤더꽃을 키우는 사람들
우리는 같은 향기가 나

일어나서 쓰다듬고 밖에 나갔다 와서 쓰다듬고
밥 먹기 전에 쓰다듬고 잠들기 전에 쓰다듬고
일기를 쓰다 다듬어서 일기 읽는 눈이
조약돌처럼 매끈매끈해지게
언제나 모두가 쓰다듬어 주는
비누는 점점
사랑받는 기분을 알아 가고 있을까
―비누는 점점 전문(34쪽)


○책속에서

P. 12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면
입에서 고래가 튀어나올 것 같아

바닷속에서 숨을 참았던 고래가 펑!
분수처럼 숨소리가 하늘 높이 솟구치는 기분
등대를 세우는 기분

참았던 걸 다 쏟아 내 버려!

정민이가 굽은 내 등을 지느러미로 쓰다듬어 주더라
노래보다 그게 훨씬 좋았어

정민이랑 나랑
둘이서 세상 끝까지 헤엄치는 돌고래처럼
우우 우우 우우 우우 우리 둘이
노래가 되었어
―우리 둘이 전문

P. 48 흑백은 어쩌면 모든 색이 다 빠져나간 뒤에도 남아 있으려는 마음
오랜 시간 바닥 생활을 하던 그림자의 영역
흰머리가 나고
책의 옆면처럼 서로를 오래 읽은 흔적처럼 바랜다 해도
이 세상에 남으려는 마음
―흑백사진 전문

○추천글
김준현 시인의 시집은 연한 심장에 귀를 기울이는 예쁜 책이다. 그래서 읽고 나면 더 많이 사랑하고 싶고 더 많이 질문하고 싶고 더 용감하게 ‘사랑한다’고 쓰고 싶어진다. 계속해서 곰 인형의 배를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며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귀를 채우듯, 마음을 듣고 또 듣는 아름다운 책이다. - 고명재

[목차]
제1부 지구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어서
넓이를 구하는 공식
노랑
우리 둘이
내 속엔
인공위성의 마음
내 생각
난 너의 그런 점이 좋아
RH null
나를 깎는 너
뒤따라오는 말
단물
가까운 사이
장거리 통화

제2부 책의 옆면처럼 서로를 오래 읽은 흔적처럼
사랑한다고
터질 때
바른 애들만
가슴에 두 번, 배에 한 번, 등에 한 번
사랑받는 일
비누는 점점
AI-1
AI-2
AI-3
AI-4
AI-5
내 안에 둘이나
툭, 툭
얼마나 먼 줄
흑백 사진
꽃잎과 뿌리의 장거리 통화를 엿들었다
조용히 자라요
지퍼
비가 왔으면 좋겠다
업데이트
윤동주 일차원
나의 어느 면이든

제3부 민들레가 민들레끼리 텔레파시를 주고받듯이
서커스
이 꽃길 걷기
저 꽃길 걷기
약이 듣는 것들
열대의 아이
턱 밑에 ㄷ 심기

ㅇㅇ
화가 난 손가락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
오디션
야구 선수가 꿈이었는데 이젠 아냐
지구본 독재자
겨울 왕국 국민들
나무 의지
살아 보겠다는 말
벽돌 깨기 게임 1
벽돌 깨기 게임 2

공벌레의 일기
후드 티
초록색-녹색 신호
ㅁ 위에서
바람개비 정원

해설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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