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추천사>
우리는 세대와 소속, 장애 여부, 개인과 역사의 접점에 따라 수시로 타인과 스스로를 분류하지만 그 잣대는 금이 가 있거나 어긋나 있을 때가 많다. 정확하게 분류되지 않는 영역에 남은 누군가는 이쪽과 저쪽 사이, ‘관대’와 ‘매정’ 사이를 부유하다 결국엔 뒤늦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감당하기도 한다. 성해나의 소설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성해나의 소설은 세계의 미세한 금과 어긋난 지점을 포착해내면서도 타인에게 한 발 다가갈 때 점등되는 빛을 조심스럽게 쓸고 보듬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문학의 일임을 안다. 그을려서 더 아름다운 그 빛을 찾는 독자에게 성해나의 첫 소설집이 도착했다. _조해진(소설가)
성해나의 소설은 부단히 성실하게 따뜻한 마음을 품어왔다. 닿을 수 없는 이해란 걸 알고 있지만 실패를 반복하며 그 낙차를 기록하고, 짙은 오해 속에 숨겨진 진심을 세심하게 그려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둠을 거둔 이곳에서 맞이한 환하고 따뜻한 빛을 열렬히 사랑해도 좋을 것이다. 혹시나 들이닥칠지 모를 또다른 어둠에 대해서라면 이른 고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빛을 걷으면 빛, 이 소설집의 제목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더 밝은 쪽으로 나아가리란 낙관과 믿음, 이 단어들을 사어(死語)로 두지 않을 힘이 이 안에 있기에 지금의 빛은 더욱이 찬란하다. _소유정(문학평론가)
<본문 중에서>
도호와는 틴더로 만났다. 그 시기엔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마음에 들지 않을 땐 화면을 가볍게 밀어 거절할 수 있는 관계가 편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으레 발생하는 변수가 싫었고, 지지부진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지겨웠다. 그때는 그랬다.(「언두」, 9~10쪽)
그때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과 비슷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함부로 동정하지 않으려, ‘난 다 이해해’ ‘괜찮아’ 따위의 무책임한 말을 뱉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던 것만 같다.(「언두」, 13쪽)
이목씨는 말했다. 사람들이 극장을 찾는 이유 중에는 타인과 같은 포인트에서 폭소하고 글썽이는 교류의 순간을 소중한 기억으로 여기기 때문도 있다고, 자신도 그렇다고, 그러니 여기서는 크게 숨을 쉬고 웃고 울어도 된다고.(「화양극장」, 67쪽)
저 시기의 나는 참 위태로웠어요. 다시 저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결코 내 마음을 속이지 않을 거예요. 속 편히 웃고 울고 싸우고. 견디지 않을 거예요.(「화양극장」, 69쪽)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화양극장」, 92쪽)
나는 늘 그랬으니까.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복직에 희망을 걸고, ‘여로가 평안하길 바란다’는 넉넉한 덕담을 건넬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다시 도래하길 바라고, 희미해지는 우정이 미약하게나마 지속되길 고대하고…… 아둔하고 무모하게.(「당춘」, 250쪽)
가족으로 묶이지 않은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입원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 할머니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까지 보호자로 호명되기 힘든 나는 늘 망설이고 머뭇댈 뿐이었다. 그녀와 함께 생활하며 차츰차츰 쌓아온 감정의 지층은 가족이라는 명목 앞에서 쉽게 허물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오즈」, 326쪽)
새로 구한 집은 좁고 창도 하나뿐이었지만, 산책로와 마주해 있어 조용했고 무엇보다 볕이 잘 들었다. 남향으로 난 창으로 반듯하게 볕이 쏟아졌고, 그 빛 속에 누워 있으면 혼자라는 말이 더이상 쓸쓸하게 들리지 않았다.(「오즈」, 337쪽)
마음은 참 쉽게도 뒤집힌다. 미워하다가도 불현듯 애틋해지고, 충분하다 여기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해지는, 모녀 관계란 원래 이렇게 변덕스럽고 불완전한 것이 아닌가.(「김일성이 죽던 해」, 350쪽)
[목차]
언두 … 007
화양극장 … 055
OK, Boomer … 097
괸당 … 127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 … 173
당춘 … 209
오즈 … 275
김일성이 죽던 해 … 339
해설│소유정(문학평론가)
낙차의 기록 … 395
작가의 말 … 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