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곳곳에서 조용히 빛나는 모두를 위해 이 책을 지었습니다.“
『기차가 출발합니다』는 세상과 만나는 기쁨(『쪽!』), 말하지 않아도 나눌 수 있는 마음(『우리 누나, 우리 구름이』),
함께여서 더 좋은 순간(『우리는 엄마와 딸』)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진솔한 감동을 그림책에 담아 온 정호선 작가의 신작이다.
데뷔작인 『쪽!』을 발표한 2010년 이래로 지난 10년간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정진해 온 작가의 새로운 성과를 마주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온정 어린 시선이 이번에는 낡고 오래된 증기 기관차에 닿았다.
작가는 과거의 추억이 되어 버린 증기 기관차를 수차례에 걸친 감수를 통해 재현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로 소란한 기차역에 태연히 배치해 현재와 과거가 함께 호흡하는 환상적인 장면을 구현했다.
작가의 공력이 돋보이는 증기 기관차의 외관은 4미터의 널따란 종이에 0.1밀리미터의 가는 펜선을 촘촘하게 쌓아 묘사한 결과다.
중후한 아름다움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증기 기관차, 저녁놀에 물들어 가는 하늘의 드라마틱한 변화,
68종에 달하는 각양각색 승객들로 가득한 기차역은 일면 화려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소박한 인물들이 보인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은 정호선 작가의 이웃과 친구 들로부터 모티프를 얻어 탄생하게 되었다.
“엄마 언제 와?”라는 아이의 재촉에 부지런히 일하는 얼룩말 회사원,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길에 오른 아빠 고양이와 아이 고양이,
오랜 노력 끝에 손 빠른 매표원이 된 나무늘보 등의 책 속 캐릭터가 왠지 모르게 친숙한 까닭이다.
커버 안쪽의 캐릭터 소개는 “세상 곳곳에서 조용히 빛나는 모두를 위해 이 책을 지었”다는 작가의 따스한 상상력이 십분 발휘되는 대목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향해 독자의 눈과 가슴을 반짝이게 한다.
기차의 물성을 살린 4미터 너비의 아코디언 그림책
나만의 방식으로 읽으며 완성하는 이야기
『기차가 출발합니다』는 한 면씩 넘기면서 읽어도 좋지만, 내구성이 좋은 보드북으로 제작되어 책을 바닥에 세우고 모든 면을 펼친 채 읽기에도 좋다.
4미터 너비의 책장을 끝까지 펼치고 읽으면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 감상할 수 있고,
한 면 한 면을 천천히 읽어 나가면 책 속의 섬세한 묘사를 관찰하고 등장인물 저마다가 가진 이야기를 상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책장을 빠르게도 넘겨 보자. 달리는 기차를 눈으로 좇는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장을 어떻게 넘기고 보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연출되는 이 그림책은 독자에게 기존의 독서 감상에서 벗어나 책을 능동적으로 쥐고 놀면서 작품에 직접 참여하기를 권한다.
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은 그림책 안으로 들어가 잠시나마 나만의 기차 여행을 경험하고 돌아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