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라는 외로움에 젖은 어느 날 연필은 소년을 그리기 시작했다. 곁에는 개와 고양이를 두고 이들에게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명을 얻은 이들은 갑자기 불만을 토해낸다. 생기가 없다고. 그래서 각 그림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색칠을 한다. 그럼에도 불만은 가라앉지 않는다. 온 세상에 투덜거림이 가득하자 연필은 그림들의 소원을 위해 지우개도 그렸다.
처음에는 모든 게 좋았다. 그림이 원하는 대로 꼭 알맞게 지워줬으니까. 그런데 이 지우개는 지우고 또 지웠다. 연필이 아무리 많이 그려내도 지우개는 모두 지운다. 끝내 있던 것들 마저 사라지고…….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작가 Allan Ahlberg의 《The Pencil》입니다. 마치 연필 한 자루로 마치 세상을 창조하는 기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는 이야기로, 지우개라는 악몽을 물리치는 기발한 상상력에 웃음을 멈출 수 없게 만듭니다. 책을 덮고 나면 무언가를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연필에 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