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2002년에 출간된 Sarah Waters의 《Fingersmith》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 덕분에 국내에 널리 알려졌죠.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나자마자 고아로서 소매치기가 된 Sue Trinder가 사기꾼과 함께 시골의 아가씨를 꾀어 그녀의 유산을 노리는 내용입니다. 영화로 보신 분도 많을 테지만, 사실 이 작품은 줄거리 설명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작품의 재미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역할만 할 뿐일 거예요.
하지만 영화가 워낙에 인상적이었기에 차별성은 좀 두는 게 좋겠죠. 영화는 기본적으로 시청각에 호소하는 종합예술이지만 러닝타임이라는 제약이 있습니다. 반면 소설은 독자의 상상에 기대고 있지만 시공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오히려 부분적인 감각의 극대화가 가능하죠.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자 도구의 역할을 하는 손Finger입니다.
소매치기를 뜻하는 Fingersmith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무엇이든 손으로 잘하는 사람을 의미했다고 합니다. 레즈비언 소설로도 유명한 만큼 그녀들의 감정교류와 욕망을 손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요, 영화 속 적나라한 성애장면 못지않은 끈적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장갑을 끼면 마치 냉랭한 남인 듯 차가운 가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19세기 당시 시대상을 온갖 캐릭터와 더불어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거의 거세되다시피 한 시대적 분위기가 소설 속에서는 계급과 계층 간의 첨예한 갈등까지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서사가 있기에 주체적 여성의 행보가 돋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흔히 원작보다 나은 영화는 없다(예외도 있는 게,《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가 훨씬 낫더라고요)고 하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훌륭한 작품임은 분명하나, 확실히 원작보다는 재미가 덜 한 것이 개인적 생각입니다. 1부와 2부를 거쳐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화려하게 터지는 마지막 3부까지 이르고 나면, 누구나 아마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네요.
by 이글랜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