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책 속에서
해석은 예술 작품의 감각적 경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거기에서부터 나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감각 경험을 당연히 여길 수가 없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는지, 게다가 도시에는 우리 감각을 두들기는 온갖 맛과 냄새와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라. 우리 문화는 과잉과 과잉 생산을 기반으로 한다. 그 결과로 우리 감각 경험의 선명도는 꾸준히 떨어진다. 현대 생활의 모든 조건이 합해져 우리의 감각 기관을 둔화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해석학이 아닌, 예술의 성애학이 필요하다.”
-36쪽, 「해석에 반하여」
예술 작품에서 표현성이 중요한 까닭, 표현성 곧 스타일의 가치가 내용보다 우선하는 까닭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실낙원』을 읽으며 느끼는 만족감은 신과 인간에 관한 작품의 관점 때문이 아니라 이 작품에 구현된 탁월한 에너지, 활력, 표현성 때문이다.
또한 그렇기에 예술 작품은 아무리 표현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작품을 경험하는 사람의 협력에 크게 의존한다. 사람이 작품에서 ‘말하는’ 것을 인지하고도 둔감해서 또는 몰입하지 않아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유혹일 뿐 강압이 아니다.
-47쪽, 「스타일에 관하여」
핵심은 새로운 기준이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움과 스타일과 취향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
새로운 감수성은 고통스러울 정도의 진지함과 함께 재미와 위트와 노스탤지어 모두에 몰두한다. 새로운 감수성의 관점에서는 기계의 아름다움, 수학 문제 해법의 우아함, 재스퍼 존스의 회화, 장뤼크 고다르의 영화, 비틀스의 개성과 음악까지 모든 것에 동등하게 접근하고 감상할 수 있다. -431쪽, 「하나의 문화와 새로운 감수성」
캠프 취향은 판별이 아니라 즐기고 감상하는 방식이다. 캠프는 관대하다. 즐기기를 바란다.
캠프 취향은 진지함이 나쁜 취향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제대로 극적인 사람을 비웃지 않는다. 캠프 취향은 열렬한 실패에서 성공을 찾아낸다. 일종의 사랑, 인간 본성에 대한 사랑이다. -415쪽, 「‘캠프’에 관한 노트」
나는 열렬한 편파성을 품고 다양한 장르에 속하는 주로 동시대의 예술 작품이 나에게 제기한 문제들에 관해 썼다. 특정한 판단과 취향의 근간이 되는 이론적 가정을 끄집어내어 명확히 하
고 싶었다. (...) 어쨌든 내 글에 가치가 있다면 특정 작품에 대한 평가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서 제기된 문제에 흥미로운 측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예술 작품에 점수를 매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애호가이자 지지자로서 글을 썼다.
-14쪽, 「들어가며」
[목차]
여는 글 ― 정여울
Ⅰ
해석에 반하여
스타일에 관하여
Ⅱ
고통받는 사람의 본보기로서 예술가
시몬 베유
카뮈의 『작가 수첩』
미셸 레리스의 『성년』
영웅으로서의 인류학자
죄르지 루카치의 문학 비평
사르트르의 『성 주네』
나탈리 사토르와 소설
Ⅲ
이오네스코
대리인 고찰
비극의 죽음
극장 가기 등
마라/사드/아르토
Ⅳ
로베르 브레송 영화의 정신적 스타일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
재앙의 상상력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
레네의 〈뮈리엘〉
소설과 영화에 관한 소고
Ⅴ
내용 없는 경건
정신분석과 노먼 O. 브라운의 『죽음에 맞선 삶』
해프닝- 극단적 병치의 예술
‘캠프’에 관한 노트
하나의 문화와 새로운 감수성
옮긴이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