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과거 청산과 새로운 삶, 그리고 현실로의 귀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작품에 앞서 내놓은 『양을 쫓는 모험』은 권력 기구의 중추를 지배하려 했던 ‘양’의 야망을 ‘양’의 몸 안에 이식한 ‘쥐’라는 친구가 ‘결단=자살’에 의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소멸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양’을 둘러싼 그의 이야기 시리즈는 일단 『양을 쫓는 모험』으로 끝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을 완성함으로써 1970년을 원점으로 한 작가 자신의 ‘전공투운동’을 청산하는 문제와 그 이후의 십 년간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셈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학창 시절 몰두했던 ‘전공투운동’이란 60년대 일본의 정국을 무질서와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학생 운동으로, 반미·반체제·반전 등의 구호를 내걸고, 화염병 데모 사태에서 무장 투쟁까지 전개했던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졌다. 그중 일부는 외국에 나가 무장 투쟁을 하며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 공항에서 기관총을 난사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게 한 대량 살육의 참극을 빚어냈는가 하면, 여객기를 납치하여 북한으로 간 요도호 사건의 주인공들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속했던 ‘전공투’는 그런 좌익 과격파는 아니었지만, 국회 난입 사건과 도쿄대학교 야스다 강당 장기 점거 투쟁을 벌였던 일본판 학생 조직의 중추적 조직이었다.
도쿄대학교 야스다 강당에서의 경찰기동대와 농성 학생 조직과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충돌 끝에 조직이 무산된 이후 ‘전공투’는 급격히 퇴조하기 시작해서,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일본 학생운동의 소멸과 함께 자신도 ‘관념의 세계=혁명’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가 지향했던 관념, 즉 혁명의 세계란 과연 어떤 것이었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래 『1973년의 핀볼』과 『양을 쫓는 모험』의 초기 삼부작은, 그처럼 상실한 것들에 대한 체념과 극도의 허무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관념의 왕국이 무너진 후의 주인공 ‘나’가 직면하는 당혹감과 현실 세계, 즉 일상생활로의 귀환을 그리고 있다. 그 기념비적 삼부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가 원했던 ‘혁명’이 궁극적으로 생각해 보면 관청의 간판을 바꾸는 일, 가령 내각을 인민회의나 무슨 위원회로 바꾸는 것 같은 일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또 어떤 뚜렷하고 체계적인 이념이라기보다, 그저 불만이 가득 찬 현실 세계를 펑 하고 일거에 폭파하고 싶었던 열망에 불과했다고 독백하기에 이른다. 그처럼 부질없는 상실감이 무엇이었는가를 탐색하고, 그 상실한 것에 대한 결별을 위해 쓰인 작품이 그 초기 삼부작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그가 젊음을 송두리째 바치려 했던 학생 운동=전공투의 관념세계에서 벗어난 개인사의 검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청산과 새로운 삶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과거’를 상징하는 ‘양 사나이’를 다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해서, 일상과 비일상, 이념과 현실, 현실 세계와 관념 세계와의 모호한 경계 인식과 혼돈에서의 해탈을 시도하게 된다. ‘양 사나이’는 그런 혼돈이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서 온다고 일러 준다. 그리고 모든 연대와 연계점을 풀어 버린 대신에 이젠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았으므로 ‘고독’이라는 새로운 세속의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은 ‘양 사나이’에 따르면 계속 ‘춤을 추는 것’이다. ‘춤을 추는 수밖에 없어. 그것도 남보다 멋지게 추는 거야.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추는 거지.’ 바로 이 문장이 『댄스 댄스 댄스』의 매력적인 테제다. 춤을 춘다는 것은 음악과 분위기에 잘 맞추고, 파트너의 발을 밟지 않도록 신경 쓰고, 다른 커플들과 부딪치지 않게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나’ 자신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새로이 정립해 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상실’ 뒤에 오는 ‘재생’의 감흥
‘나’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친구인 ‘쥐’를 자살로 잃고, 여자 친구 키키를 실종으로 잃게 된다. 키키는 문제의 ‘양’을 찾는 길잡이임과 동시에 ‘나’와 현실을 결부시키는 매개체와 같은 존재기도 하다. 이 키키는 『댄스 댄스 댄스』에 다시 등장해서 ‘양 사나이’와 함께 ‘나’를 현실에 안착하게 만드는 인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과거=관념=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와 터를 잡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을 청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키키는 무녀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야기의 서두가 키키가 실종되었던 그 호텔을 찾는 데서 시작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호텔에서 키키는 찾지 못하고 대신 ‘양 사나이’가 등장해서 계속 춤을 춰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결과, 비로소 고독과 고립 속에 팽개쳐져 있던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된다.
‘상실감’과 ‘절망’과 같은 삶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부분을 뚫고 나옴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재생’이랄 수 있는 재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인 ‘나’ 역시 고독한 절망적 상황을 뚫고 나와 ‘유미요시‘와의 생활을 결심하고, 옆에서 곤히 잠든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현실임을 깊이 깨닫는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는 결의에 찬 독백 속에, ‘이곳’이라는 현실 속에 ‘죽음’, 즉 ‘과거=관념’의 세계에서 스스로 완전히 해방을 실현하게 된다. 그런 해방에의 결의는 삶을 긍정하고, ‘삶은 곧 현실’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상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하겠다.
책 속에서
“아주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어? 그러니까 한밤중에 그런 생각이 문득 들거나 해?”
“물론 그럴 때가 있지”라고 나는 말했다.
“저기, 왜 지금 여기서 그런 일을 갑자기 떠올린 거야?”
“아마 네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일 거야”라고 나는 대답했다.
--- pp.13~14
유키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암시적인 침묵이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암시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암시의 암시성이라는 것을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암시성이 현실의 형태를 띠기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페인트가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 p.100
“무력감” 하고 그녀는 말했다. “뭔가 거대한 것에 의해 휘둘리고 있어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 어쩔 도리가 없는 그런 기분.”
“그럴지도 몰라.”
“그런 때에는 어른은 술을 마셔.”
“맞는 말이군” 하고 나는 말했다.
--- pp.150~151
아무리 풍기문란한 일이라도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단순히 선악의 척도로는 잴 수 없게 된다. 거기에 그것의 독자적이며 독립된 환상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환상이 생겨나면, 순수한 상품으로서 제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한다. 고도자본주의는 모든 틈새로부터 상품을 발굴해 낸다. 환상, 이것이 키워드다. 매춘이든, 인신매매든, 계층 간의 차별이든, 개인 공격이든, 도착적 성욕이든, 무엇이든 간에 예쁘게 포장해서 예쁜 이름을 붙이면 훌륭한 상품이 되는 것이다.
--- pp.170~171
“어쩐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하고 그는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손에 넣으려고 하면 웬만한 건 다 손에 들어오는데, 정말로 갖고 싶은 건 손에 들어오지 않거든.”
--- p.183
“너와 함께 있으면, 이따금 그런 감정이 되돌아오는 때가 있어. 그리고 옛날의 빗소리나 바람 냄새를 한 번 더 느낄 수 있어. 바로 가까이에서 느끼는 거야. 그런 건 나쁘지 않아. 그게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는, 너도 머지않아 알 수 있을 거야.”
--- p.218
자,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한 번 더 댄스 스텝을 밟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감탄할 만큼 춤을 추지 않으면 안 된다. 스텝, 그것이 유일한 현실이다. 그것은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일이다. 생각할 것까지도 없다. 그것은 내 머릿속에 천 퍼센트의 현실로서 새겨져 있다. 춤을 추는 것이다. 아주 능숙하게.
--- p.296
나는 문득 어린 시절에 읽은 과학책 생각이 났다. 거기에는 ‘만일 마찰이 없으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질문 항목이 있었다. ‘만일 마찰이 없으면’ 하고 책에는 쓰여 있었다. ‘자전의 원심력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것이 우주로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나는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 p.322
정말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비참하게 혼란스럽고 힘겨운 일이야. 의미가 없는 부분이 너무 많고.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그런 게 없으면 잘 살아갈 수 없어.
--- p.328
“귀를 기울이면 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뚫어지게 바라보면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대상물이 보여.”
“표어 같아”라고 그녀는 말했다.
“표어가 아냐. 살아가는 자세를 언어로 나타냈을 뿐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 p.367
[목차]
댄스 댄스 댄스 하7
후기384
역자의 말 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