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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번호
211078
ISBN
9788970125428
페이지,크기
400 , 133*192mm
출판사
출간일
2023-01-26
[출판사서평]
과거 청산과 새로운 삶, 그리고 현실로의 귀환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작품에 앞서 내놓은 『양을 쫓는 모험』은 권력 기구의 중추를 지배하려 했던 ‘양’의 야망을 ‘양’의 몸 안에 이식한 ‘쥐’라는 친구가 ‘결단=자살’에 의해서 이 세상으로부터 소멸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양’을 둘러싼 그의 이야기 시리즈는 일단 『양을 쫓는 모험』으로 끝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을 완성함으로써 1970년을 원점으로 한 작가 자신의 ‘전공투운동’을 청산하는 문제와 그 이후의 십 년간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셈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학창 시절 몰두했던 ‘전공투운동’이란 60년대 일본의 정국을 무질서와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학생 운동으로, 반미·반체제·반전 등의 구호를 내걸고, 화염병 데모 사태에서 무장 투쟁까지 전개했던 학생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졌다. 그중 일부는 외국에 나가 무장 투쟁을 하며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 공항에서 기관총을 난사해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하게 한 대량 살육의 참극을 빚어냈는가 하면, 여객기를 납치하여 북한으로 간 요도호 사건의 주인공들도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속했던 ‘전공투’는 그런 좌익 과격파는 아니었지만, 국회 난입 사건과 도쿄대학교 야스다 강당 장기 점거 투쟁을 벌였던 일본판 학생 조직의 중추적 조직이었다.

도쿄대학교 야스다 강당에서의 경찰기동대와 농성 학생 조직과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충돌 끝에 조직이 무산된 이후 ‘전공투’는 급격히 퇴조하기 시작해서, 1970년대 초에 이르러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일본 학생운동의 소멸과 함께 자신도 ‘관념의 세계=혁명’의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가 지향했던 관념, 즉 혁명의 세계란 과연 어떤 것이었던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래 『1973년의 핀볼』과 『양을 쫓는 모험』의 초기 삼부작은, 그처럼 상실한 것들에 대한 체념과 극도의 허무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시 말하면 관념의 왕국이 무너진 후의 주인공 ‘나’가 직면하는 당혹감과 현실 세계, 즉 일상생활로의 귀환을 그리고 있다. 그 기념비적 삼부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가 원했던 ‘혁명’이 궁극적으로 생각해 보면 관청의 간판을 바꾸는 일, 가령 내각을 인민회의나 무슨 위원회로 바꾸는 것 같은 일이었다고 깨닫게 된다. 또 어떤 뚜렷하고 체계적인 이념이라기보다, 그저 불만이 가득 찬 현실 세계를 펑 하고 일거에 폭파하고 싶었던 열망에 불과했다고 독백하기에 이른다. 그처럼 부질없는 상실감이 무엇이었는가를 탐색하고, 그 상실한 것에 대한 결별을 위해 쓰인 작품이 그 초기 삼부작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그가 젊음을 송두리째 바치려 했던 학생 운동=전공투의 관념세계에서 벗어난 개인사의 검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청산과 새로운 삶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그래서 ‘과거’를 상징하는 ‘양 사나이’를 다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해서, 일상과 비일상, 이념과 현실, 현실 세계와 관념 세계와의 모호한 경계 인식과 혼돈에서의 해탈을 시도하게 된다. ‘양 사나이’는 그런 혼돈이 모든 것을 상실한 채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데서 온다고 일러 준다. 그리고 모든 연대와 연계점을 풀어 버린 대신에 이젠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았으므로 ‘고독’이라는 새로운 세속의 짐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간다는 것은 ‘양 사나이’에 따르면 계속 ‘춤을 추는 것’이다. ‘춤을 추는 수밖에 없어. 그것도 남보다 멋지게 추는 거야.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추는 거지.’ 바로 이 문장이 『댄스 댄스 댄스』의 매력적인 테제다. 춤을 춘다는 것은 음악과 분위기에 잘 맞추고, 파트너의 발을 밟지 않도록 신경 쓰고, 다른 커플들과 부딪치지 않게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나’ 자신이 자기 이외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새로이 정립해 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상실’ 뒤에 오는 ‘재생’의 감흥

‘나’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친구인 ‘쥐’를 자살로 잃고, 여자 친구 키키를 실종으로 잃게 된다. 키키는 문제의 ‘양’을 찾는 길잡이임과 동시에 ‘나’와 현실을 결부시키는 매개체와 같은 존재기도 하다. 이 키키는 『댄스 댄스 댄스』에 다시 등장해서 ‘양 사나이’와 함께 ‘나’를 현실에 안착하게 만드는 인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과거=관념=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와 터를 잡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을 청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키키는 무녀와 같은 존재가 된다. 이야기의 서두가 키키가 실종되었던 그 호텔을 찾는 데서 시작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호텔에서 키키는 찾지 못하고 대신 ‘양 사나이’가 등장해서 계속 춤을 춰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결과, 비로소 고독과 고립 속에 팽개쳐져 있던 ‘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 된다.

‘상실감’과 ‘절망’과 같은 삶에 있어서의 부정적인 부분을 뚫고 나옴으로써, 사람은 누구나 ‘재생’이랄 수 있는 재출발을 할 수 있는 것이리라.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인 ‘나’ 역시 고독한 절망적 상황을 뚫고 나와 ‘유미요시‘와의 생활을 결심하고, 옆에서 곤히 잠든 그녀의 자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현실임을 깊이 깨닫는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에 머무는 것이다”는 결의에 찬 독백 속에, ‘이곳’이라는 현실 속에 ‘죽음’, 즉 ‘과거=관념’의 세계에서 스스로 완전히 해방을 실현하게 된다. 그런 해방에의 결의는 삶을 긍정하고, ‘삶은 곧 현실’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사상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하겠다.

책 속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솔직히 말해서 짐작이 안 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 하면 말이야” 하고 그녀는 내 눈을 보면서 말한다. “추운 겨울 아침에, 싫어라, 일어나고 싶지 않아, 하고 생각하면서, 커피 향기와 햄에그를 굽는 지글거리는 냄새와 토스터 작동이 멈추며 나는 탁탁 하는 소리에 그만 참을 수 없어서, 과감하게 침대를 박차고 나오는 일이야.”
“좋아. 해보자고” 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 pp.28~29

새벽녘에 나는 혼자서 멍하니 달을 바라보면서, 이런 일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나는 곧 또 어디선가 다른 여자와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유성처럼 자연스레 이끌린다. 그리고 다시 헛되이 기적을 기대하며, 시간을 갉아먹으며, 마음을 마멸시키며, 헤어져 가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 p.33

우리는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거기에선 낭비가 최대의 미덕이다. 정치가는 그것을 내수의 세련화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을 무의미한 낭비라고 부른다. 사고방식의 차이다. 하지만 비록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다 해도, 어쨌든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나 수단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글라데시에도 수단에도 별다른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일을 계속했다.
--- p.47

그런 건 만성이 돼. 일상생활에 파묻혀서 어느 것이 상처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거야. 하지만 그것은 거기에 있지. 상처라는 건 그런 거야. 이거다 하고 끄집어내어 보여 줄 수도 없어.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대수로운 상처가 아냐.”
--- p.115

당시엔 그렇게 생각지 않았지만, 1969년까지만 해도 세계는 단순했다. 전투경찰 대원에게 돌을 던지는 정도의 일만으로도, 경우에 따라서는 누구나 자기 의사 표명을 할 수 있었다. 나름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속화된 철학의 바탕 아래 도대체 누가 경찰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도대체 누가 자진해서 최루가스를 뒤집어쓰려고 하겠는가?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 p.126

“하지만 춤을 추는 수밖에 없어” 하고 양 사나이는 말을 이었다. “그것도 남보다 멋지게 추는 거야. 모두가 감탄할 만큼 잘 추는 거지. 그렇게 하면 나도 당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몰라. 그러니 춤을 추는 거야. 음악이 계속되는 한.”
--- pp.180~181

나는 예전엔 인간이란 건 일 년, 일 년 순서대로 나이를 먹어 가는 거라고 생각했어.” 고탄다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듯 하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 인간은 한순간에 나이를 먹는다고.”
--- p.268

이따금 그녀가 부러워졌다. 그녀가 지금 열세 살이라는 것이. 그녀의 눈에는 갖가지 일들이 모두 신선하게 비칠 것이다. 음악이며 풍경이며 사람들이. 그것은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의 모습과 아주 다를 것이다. 나 역시 옛날에는 그랬다. 내가 열세 살이었을 무렵, 세계는 훨씬 단순했다. 노력은 당연히 보답을 받아야 하는 것이었고, 말은 당연히 보증될 것이었고, 아름다움은 그곳에 머물 수 있는 것이었다.
--- pp.365~366

[목차]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메시지5
댄스 댄스 댄스 상11
이 작가의 신간 & 인기 도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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