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바다가 많은 그리스지만, 이 아토스의 바다와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곳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냥 투명하고 파랗고 깨끗하기만 한 바다라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 바다의 아름다움은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뭐랄까, 전혀 다른 차원의 투명함이자 푸르름이다. (14쪽)
이 반도에는 자연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다. 관광개발업자들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그리스 유일의 지역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지형도 험악하다. 이곳에는 평지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산뿐이다. 반도의 남쪽에는 아토스산이라고 하는 2천 미터의 산이 솟아 있다. 그리고 해안은 전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다. 어디를 가든 자신의 발로 일일이 산을 넘어가야만 한다. 이 반도에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이 ‘전혀’라고 해도 될 만큼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1쪽)
대라브라에서도 변함없이 루쿠미와 커피와 우조 3종 세트가 나왔다. 탐욕스럽게 루쿠미를 먹어 치운다. 이 달콤함이 지금에 와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행복하다. 입 안에 이 젤리 과자를 넣으면 평안한 달콤함이 온몸의 세포들까지 전달되는 것이 느껴진다. 이렇게 매일 먹는다면 루쿠미 중독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커피도 맛있다. 우조도 맛있다. 로마의 레스토랑에서 즐겼던 맛 따윈 이미 오래전에 어딘가로 날아가버렸다. (100쪽)
여행을 하다 보면 모든 일이 예정대로 순조롭게 풀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국땅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일이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전개되지 않는다. 거꾸로 말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 이상한 것, 기막힌 일들과 조우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133-134쪽)
결국 튀르키예 여행 중에 우리를 어떻게든 버티게 해준 것은 빵과 야채와 치즈, 그리고 차이였다. 내가 튀르키예에서 제일 마음에 든 것, 그것은 빵이다. 그리고 차이하네(차이를 파는 카페). 튀르키예의 빵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맛있다.(어느 가이드북에도 그런 얘기는 한 마디도 쓰여 있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튀르키예의 빵은 크게 부풀린 보통 타입과 납작하고 흰색인 타입이 있는데, 두 종류 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맛있다. 여러 나라에서 지금까지 먹어본 빵 중에 튀르키예 빵이 제일 맛있었다. 특히 시골로 갈수록 더욱 맛있다. (190쪽)
그곳 공기는 그 어느 곳과도 다른 뭔가 특수한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부에 와닿는 감촉도 냄새도 색깔도, 그 모든 것이 내가 이제까지 맡아왔던 그 어떤 공기와도 달랐다. 그것은 불가사의한 공기였다. 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랜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203쪽)
아침 식사를 한 뒤 거리를 산책하는데 구두닦이 소년이 다가와서 나의 하얀 운동화를 닦게 해달라고 했다. 하얀 운동화를 대체 어떻게 닦는다는 것인지 흥미로웠지만 운동화를 버릴 것 같아서(아마 그랬을 것이다) 거절했다. 튀르키예라는 나라의 어느 부분은 좋든 싫든 확실히 나의 상상력을 능가한다. (245쪽)
[목차]
1부 그리스―아토스, 신들의 리얼 월드
굿바이, 리얼 월드!
아토스는 어떤 세계인가
다프니에서 카리에스로
카리에스에서 스타브로니키타로
이비론 수도원
필로테우 수도원
카라칼루 수도원
대라브라 수도원
프로드로무 스케테까지
카프소칼리비아
아기아 안나―아토스여 안녕!
2부 튀르키예―차이와 군인과 양, 21일간의 튀르키예 일주
군인의 나라
빵과 차이
튀르키예의 다섯 가지 얼굴
흑해
호파
반 고양이
하카리로 향하다
하카리 2
말보로
24번 국도의 악몽
쿠르드인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