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때는 바야흐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9세기 초, 판타지 상에서 최강의 지성체라고 불리는 ‘용’이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용의 등에는 용기사가 타고 있으니, 19세기 전쟁에 난데없는 공군이 판친다.
주인공 로렌스는 프랑스의 함선을 나포하는데 여기서 용의 알을 하나 발견한다. 이 때문에 영국 해군대령인 로렌스는 해군에서 졸지에 공군으로 소속이 바뀌게 되고 조국인 영국을 지키는 임무를 용을 타고 수행하게 된다.
《Temeraire》에서는 Dragon이 지구에서 인간과 공존하고 있습니다. 따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쟁에 도구가 되어 있습니다. 땅에서는 보병부대가 뛰어다니고, 헤아릴 수 없는 배가 바다를 횡행하며, 하늘에는 Dragon Rider가 누비고 있습니다.
분위기만 보면 대충 스케일 크게 노는 전쟁이야기쯤 되겠구나…… 생각하기 쉬운데 물론 《Temeraire》는 스펙타클한 전쟁을 비롯해서 판타스틱한 요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단지 재미만을 추구한 작품이 아닙니다. 주제가 빈약한 대작이란 결코 있을 없듯 우리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논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주인공 로렌스는 공군 대령으로 황실을 수호해야 할 사명과 소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Dragon에게는 인간의 황실보다 등뒤의 Dragon Rider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들 나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있기에 인간의 사고방식과 잣대를 기준으로 가를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어렵기만 하다면 책을 펼쳤다가 바로 덮어버릴텐데, 쉴새 없이 쏟아지는 깨알같은 유머와 재미 때문에 한시도 책을 놓을 수가 없죠. ^^
‘대체역사소설’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반대의 결과가 나왔으면 후세사(後世史)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 이후의 역사를 소설화한 건데요, 가령 우리나라 역사의 경우 ‘삼국통일을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했다면 우리나라 지도는 요동반도를 넘어 중국 대륙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란 상상이 지배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Temeraire》는 일종의 대체역사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나폴레옹 전쟁사 중에서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트라팔가르 해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역사를 서술하는데요,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말을 빌려서 “판타지와 군사 지식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 풍성하게 묘사해낸 독창적인 소설”입니다.
사실 Dragon이라는 존재가 현세에 인간과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재미를 부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Temeraire》는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료를 열심히 고증했다고 해도 현세에 판타지를 접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다시 말하면 Butterfly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중세시대에 냉장고라는 물건이 있었다면 ‘대항해 시대’가 펼쳐지지도 않았을 것이며, 식민지 전쟁도 벌어지지 않게 됩니다. 돼지고기가 빨리 상하는 바람에 그 냄새를 지우기 위해 후추가 필요했고, 서구 열강은 후추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인도로 향하게 됩니다. 즉, 냉장고가 있었다면 돼지고기가 상하지도 않았을 테고, 후추를 찾기 위해 바다를 누비지도 않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현세에 Dragon이 살고 있다면, 분명 Dragon은 먹이사슬에서 인간보다 높은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Temeraire》에서는 가축과 같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동물로 전락해 있는데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인간사에 무리 없이 녹여내고 개연성 있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확고한 인지가 되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How to train your dragon》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동양의 龍과 서양의 Dragon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Temeraire》에는 이러한 차이도 언급하고 있는데요, 트라팔가르 해전을 비롯해 여러모로 철저한 고증이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세계 유수 언론이 극찬을 하고 있으니 시간 나면 서평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은데요, 그 중에 ‘반지의 제왕’의 감독 피터 잭슨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테메레르 시리즈는 내가 선호하는 판타지와 역사 서사물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용으로 구성된 비행 중대가 나폴레옹 전쟁에 등장하는 모습을 하루 빨리 보고 싶어, 영화화를 결심하게 되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캐릭터들이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신선하고 독창적이며 호흡도 빠르고, 생생한 캐릭터들로 가득한 멋진 작품이다”
웅장한 스케일의 대작 영화, 곧 볼 수 있겠죠? ^^
by 이글랜차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