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유럽 패션은 아르데코, 째즈, 이국적 정취, 전후의 해방감과 긴장감, 큐비즘 등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후의 혼란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퇴폐적인 쾌락에 몰두하던 유럽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예술경향인 아르데코는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러시아 발레단의 이국적 정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파리를 주된 무대로 활동한 러시아 출신의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ERTE는 러시아 발레단의 이국적인 스타일을 파리 패션계에 도입하는 데 큰 공헌을 세운 인물로 아르데코의 아버지로 불리우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그는 1915년부터 1926년까지 패션잡지 “Happer’s Bazzar”의 표지를 맡아 그렸는데, 표지 이외에도 잡지 안에 들어가는 다수의 흑백 일러스트레이션도 담당했다. 당시 파리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중에서 자신이 직접 의상을 디자인해서 그리는 사람은 ERTE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부문의 큐레이터 Stella Blum이 선정한 ERTE의 컬러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8점과 흑백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6점, 310점의 라인 드로잉과 함께 ERTE가 에디터에게 쓴 편지들, 표지 일러스트레이션의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또 각각의 라인드로잉에는 ERTE의 오리지널 캡션이 포함되어 있다.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들, ERTE의 사상과 작품세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괜찮은 연구 자료가 될 것이다.
작가가 강박증에 걸려있는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꼼꼼하고 정교하게 그려진 패턴들. 매혹적인 캐릭터와 의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반영된 의상들은 90년이 지난 오늘날에 봐도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하다.
당시의 많은 여성들은 Happer’s Bazzar에 실린 에르테의 환상적인 일러스트를 보면서 자신만의 네버랜드를 꿈꿨을 것이다.
에르테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때로는 여신 같고, 때로는 요부같고, 때로는 귀부인 같은 여성들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환상적이고 탐미적인 ERTE의 세계로 우리를 유혹한다.
지루하고 메마른 일상에 지친 사람들,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에 빠져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그들의 초대에 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리뷰: 비닐봉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