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북 리뷰
잘 쓴 기행문에는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여행을 한 기분이다. 빙의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순전히 작가의 역량이다. 이러한 역량의 여행작가가 여행이 아닌 다른 분야의 글을 쓴다면 어떨까?
우주가 간직한 장구한 비밀이 궁금해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시간의 역사》 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을 뒤적여본 사람으로서 ‘왜 이렇게 어렵지?’ ‘나는 머리가 나쁜 걸까’ 이런 자책을 심하게 했다. 책을 덮은 후에 대략적인 개념만 남았을 뿐 요약을 하라고 하면 솔직히 모르겠다는 심정뿐이었다. 호기심만으로 우주의 신비를 접하고자 하는 것은 정말 난해한 것인가, 하는 두려움만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빌 브라이슨의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을 접한 이후 버렸다. 엄청나게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내가 우주의 신비에 접근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잘 나가는 여행작가의 필력은 기어코 우주의 비밀을 엿보게 했다.
논문이 어려우면 논문을 요약해서 이미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된다. CG와 조근조근 설명하는 내레이션은 너무나 친절하니까. 그리고 다큐멘터리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재미라는 요소가 넘친다.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 존재하는 퓨전의 느낌이랄까?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를 읽고 나면 이런 교양다큐 한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대체 얼마나 재미있으면 이런 말이 나올까? 《A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는 22주간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랭크됐으며, 자연과학서로는 이례적으로 영미 아마존에서 판매순위 1위를 기록했다는 걸로 대신한다.
by 이글랜차일드